항목 ID | GC600012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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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挹翠亭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우치로 236[오치동 976-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현숙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996년 - 읍취정 철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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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691년 - 읍취정 중창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0년 - 읍취정 보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7년 - 읍취정 변형·신축 |
현 소재지 | 읍취정 -
광주광역시 북구 우치로 236[오치동 976-1]![]() |
원소재지 | 읍취정 - 광주광역시 북구 우치로 236[오치동 976-1] |
성격 | 누정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함평이씨 문중 |
관리자 | 함평이씨 문중 |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읍취정은 임진왜란 때 순절한 읍취(挹翠) 이방필(李邦弼)[?~1592]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오치동 구릉 위에 반송(盤松)이 있어 ‘읍취’라 하였으며 이에 대한 기록은 노사 기정진의 『읍취정기(挹翠亭記)』에 기록되어 있다. 내용은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가 정명을 지었고 임진왜란 때 순절한 읍취 이방필을 기리며 1691년에 이 지역에서 세거하던 후손에 의해 중창되었다. 오치향약의 소유이다.”라고 기록되었다.
한말 1898년에 남강(南岡) 이재정(李載丁)이 창계한 오치동 강의계(梧峙洞講誼契) 70여 명 계원의 강회 장소로도 쓰였으나, 1968년 설립 계원이자 계장(契長)인 김형주가 죽은 후 소멸되었다. 정자 안에는 한말의 의병장 송사 기우만(奇宇萬)[1846~1916]을 비롯해 이장헌(李章憲), 이재순(李載純), 김택수(金宅洙), 송병제(宋秉濟), 황연수(黃烈周) 등의 시문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읍취정은 광주농협 오치지점 옆길인 우치로 238번길로 들어가면 농협 옆 건물의 지하 주차장 입구 옥상에 있다.
읍취정은 중종 말기~명종대에 건립된 작은 정자였다. 임진왜란 이후에 중창되었고 1898년 이 지역 강의계의 강회(講會) 장소로 쓰였다. 읍치정은 1996년에 철거되고, 1997년에 그 자리에 읍취정을 모방한 건물이 세워졌다.
읍취정은 전면 4칸, 측면 2칸으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이다.
1997년 읍취정 옛 자리에 신축된 건물은 지하 입구의 옥상 부위인 2층에 있으며 유리문을 달았다. 함평이씨 문중 사무소, 건물 관리 사무실로 이용되고 있으며, 내부에 걸려 있었던 편액이나 현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읍취정은 나라를 위해 순국한 이를 기리는 장소로, 한말부터 현대까지 강회(講會)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이 지역 유림의 유고가 탄생하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던 곳이었으나, 현재는 현판조차 없어 그 뜻이 제대로 이어지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