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D020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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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신평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영진 |
신평2동 이주민마을 주민들은 아직도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옛 마을을 그리워하고 있다. 나이 70세가 넘은 이주민 1세대는 더욱 그렇다. 그들은 대대로 살아 온 자연촌락에서의 모듬살이가 지금까지도 몸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구미산업단지 조성으로 고향을 잃어버린 신평2동 이주민들은 유난히도 비공식적 친목조직을 많이 만들어 왔다. 여러 세대를 걸친 농경정착생활과 모듬살이를 해온 이주민들의 전통적 생활방식이 해체되고 이주지에서의 새로운 정착을 위해 자구책으로 마련한 사회문화적 적응장치가 아닌가 싶다.
전통적인 마을사회에서는 마을 단위의 자율적, 자생적 공동체 운영조직이 있는가 하면, 친목과 협동, 경제적 목적 등을 위해 성별, 연령(또래)별로 비공식적 조직을 운영하는 일이 허다하다. 마을단위의 공동체운영조직을 보통 동계 혹은 동네계, 마을계라고 부른다.
이 조직은 마을공유재산을 관리하고, 품삯이나 주민들의 일탈적 행위에 대한 제재, 마을 공동행사 등에 대한 자치적 의사결정기구로서 기능해 왔다. 후자는 성별 혹은 또래들끼리 친목을 도모하거나 금품을 각출하여 불려서 목돈을 만드는 등의 경제적 기능을 하기도 하며, 조직원들 간의 길흉사 시 노동 및 경제적 협력을 목적으로 조직화하는 경우가 많다.
신평2동 이주단지의 이주민들은 떠나온 옛 고향 마을사회에서 신늪, 장동, 매호동, 새뜸, 낙계 등 자연마을마다 지내 온 동계를 기억한다. 하지만 이주와 동시에 고향 마을의 동계는 해체되었다. 마을 주민들 모두가 같은 지역으로 이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 자연마을들이 보유하고 있던 공유재산도 보상을 받아 처분해 버렸다.
동계의 해체는 공동체사회의 해체를 의미한다. 학술적으로 해석하면 촌락이라는 공동체의 사회문화적 적응장치의 해체이다. 이주민들은 가족과 친족, 연고자들끼리 새로운 적응장치를 마련해야 하는 과제를 안는 것이며, 상당한 사회문화적, 심리적 갈등이 유발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자연마을은 동계의 해체와 더불어 공유재산을 보상받아 배분하였지만, 자연마을 중 가장 큰 마을이었던 신늪의 경우, 다른 자연마을 주민들의 협조를 받아 마을공유재산에서 지급된 보상금으로 이주단지의 대지를 구입하여 마을회관을 건립하였다.
신늪에서 이주한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타 자연마을 주민들을 아우르는 이주마을 공유재산을 마련한 셈이다. 그렇다고 이주하기 전처럼 동계를 조직하지는 않았다. 대신 개발위원회라는 조직을 새로 만들어 마을공유재산의 관리는 물론 마을 운영문제를 관장하였다.
당시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우리나라의 행정동 단위에는 개발위원회가 조직되어 있었다. 이주민 마을에서는 개발위원회가 전통촌락의 동계가 가지고 있던 기능까지도 대신한 점이 특이하다. 개발위원회는 구미시 승격 후 행정동인 신평2동 이주민마을이 법정동으로 통폐합되면서 번영회가 발족되면서 해체되고 만다.
신늪보다 규모가 작은 장동의 경우, 이주단지로 이사 온 주민들끼리 이주하기 전의 마을에서 유지해 오던 동계를 승계하여 장동에 살던 주민들만의 친목조직으로 변신시킨 사례가 있다. 아직도 장동 동계와 매호동 동계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