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C020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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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동 신동(새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삼문 |
세상의 온갖 사물을 이해하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여기서 전통적인 마을의 모듬살이를 이해하기 위해 채택한 방법 중 하나가 경관(景觀, Landscape)을 통한 이해이다. 마을 경관은 기록이 없는 마을의 역사와 주민의 삶의 양태를 보여준다.
집성마을은 일반적으로 다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종가(宗家)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 다음으로 이름난 조상과 관련된 건축물들이 있다. 종가는 한 집안을 계승하는 구심점으로 가묘(사당)를 두고 모든 조상의례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이러한 의례를 위한 건축물과 함께 공부를 위한 건축물들이 함께 자리잡고 있으니 뛰어난 조상인 현조를 위한 ‘추모지소’와 학문 탐구를 위한 ‘강학지소’가 마을의 성격을 보여주는 상징물로 존재한다. 조선 성리학의 중요 내용인 예의 실천과 관료로서 입신이나 도학의 전수를 위한 강학의 실천을 위한 장소를 마련한 것이다.
추모지소는 종택의 가묘, 사우, 재사 등이며, 강학지소는 정사, 서당, 정자 등이 있다. 학문의 정진과 예절의 신봉에 주력하는 표현물이 마을에 중요한 공간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이러한 건축물들이 해당 문중의 능력을 대외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되어 타 문중의 평가의 대상이 되므로 문중에 소속된 성원들은 건립, 유지, 관리를 위해 노력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문중의 결속이란 부수적 효과가 생기기도 한다.
읍지류와 같은 옛 문헌에 따르면, 인동(인의동, 남산)에서 동으로 8리라 하듯이 인동 관아 소재지에서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 입지한 신동은 인동에서 대구로 통하는 나들목에 위치하고 있다. 가산, 대구로 통하는 길을 따라 가다보면 왼쪽으로 우뚝 솟은 천생산을 뒤로 하고 마을 앞에는 농경지, 오른쪽으로는 천생산(天生山)에 비해 훨씬 높으며 덩치가 큰 유학산(遊鶴山)이 마을 앞을 가로막고 있다. 신동의 농경지 분포에 관한 역사적 전개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현재의 기준으로 볼 때 마을 앞에는 넉넉한 농경지가 자리 잡고 있다. 사각지라 부르는 신동지는 마을을 한참 지나서 있어서 오래전부터 마을 앞들의 농업용수용 수원지로 중요한 노릇을 맡아 온 것을 알 수 있다. 학서지는 마을보다 먼저, 마을 아래에 있어서 양수기가 도입되기 이전에는 마을 앞들에 물을 댈 수가 없었으며, 인동과 신동 사이에 자리한 농경지의 수원으로 이용되었던 것 같다. 특히 신동지를 ‘여헌 선생이 축조하였다’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뒷받침할 기록이 확인된 바는 없지만 이를 통해 신동지의 역사와 중요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15~16세기 영남사림이라 불리는 재지사족이 제언과 천방관개에 힘을 쏟았다는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헌 선생이 신동지의 수축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전언이 완전히 헛된 말은 아닐 것이다.
예전에는 학서지 못둑을 따라서 신동 마을로 들어섰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마을 남쪽을 동-서로 관통하는 국도에서 좌회전하여 북쪽으로 진입하는 곧게 뻗은 농로가 마을의 주요 통로이다.
이 농로에 들어서면, 마을 앞들 가운데쯤에 자리한 왼쪽의 동산에 오가는 이들의 눈길이 멈추게 된다. 아마도 마을 앞 무성한 숲을 이루었던‘쑤’가 농경지 간척에 따라 줄어들어 동산으로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은 뒤쪽의 천생산(天生山)을 업고 그 자락에 서쪽에서 동쪽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물론 그 가운데 마을은 북쪽의 천생산 자락으로 파고들어 알밤과 같은 배치를 하고 있다. 마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마을을 향해서 우측에는 천생산 자락이 길게 내려와 등성이를 이루고 있고 그 너머에 ‘새마(새로 생긴 마을)’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마을의 크기는 새마가 전체의 1/4 정도로 여겨진다.
마을의 집들은 북쪽이 산이요, 남쪽이 들인 까닭에 남향이 가장 많으며 동남향, 동향이 지배적이다. 배산임수에서 마을 앞에 물의 흐름이 빠져 있지만 마을 중앙을 관통하는 천생산(天生山)의 계류가 마을 뒤에서 흘러 내려 거리마를 지나서 학서지 쪽으로 흘러간다. 따라서 마을 전체는 북쪽으로 바라볼 때 동고서저, 북고남저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마을의 공동 시설물로는 현재 경로당을 겸한 마을회관 1동과 1974년 새마을사업의 일환으로 건립된 공동창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