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B020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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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원호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석대권 |
[충신정려각(忠臣旌閭閣)]
경상북도 문화재 기념물 제132호이며 원호2리 웃골 도로변에 접해있다. 선산김씨 24세인 충신 김종무(金宗武)의 충절을 기린 정려각이다. 김종무는 문간공(文簡公) 구암(久庵) 김취문(金就文)의 장자로 1548년(명종3년)에 선산(들성)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손자 약암공(藥庵公) 유(濡)의 상소로 1675년(숙종 원년)에 정표가 내려 사림에서 건립되어 수차 중수하여 현존하고 있다. 그는 임진왜란 초기 사근도(沙斤道: 현 경남 함양) 찰방(察訪)으로 비분강계하여 상주 이일(李鎰)의 진(陣)인 북천전투에서 1592년(선조 25)에 장렬히 순절하여 상주 충렬사(忠烈祠)와 남강서원에 배향되었으며 자헌대부 이조판서겸 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도총관(資憲大夫吏曹判書兼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都摠管)에 증직되었다. 내부에 ‘충신김종무지각(忠臣金宗武之閣)’이라고 새겨져 있는 비와 정려각 현판이 있다(현판내용은 부록 참조).
[대월재(對越齋)]
2002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23호로 지정되었다. 원호2리 웃골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택지개발로 2009년 충렬재, 원모재와 함께 원호리 산 141번지로 이전하였다.
선산김씨 23세인 문간공(文簡公) 구암(久庵) 김취문(金就文)의 장수지소(藏修之所)이다. 대월(對越)로 제호를 지었으며 이는 주자의 경재잠어(敬齋箴語)에서 따왔다. 1543년(중종 38)에 창건하여 후학들의 강학지소로 활용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일부가 소실되어 1667년(숙종 3)에 중수하였다. 1868년(고종 5)에 현재의 형태로 중건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대청에 대월재중수기(對越齋重修記), 대월재중수 운(對越齋重修 韻), 대월재중수상량문(對越齋重修上樑文) 등 3개의 편액이 걸려있다.
대월재의 구조는 정면 5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며, 평면은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2칸과 1칸의 온돌방을 두었다. 전면과 양측면에는 반칸 규모의 퇴칸을 설치하였다.
[점현재(店峴齋)]
원호2리 점터에 있는 선산김씨 22세손 이조참판(吏曹參判) 김광좌(金匡佐)를 추모하는 재사이다. 원호리 선산김씨 입향조인 김광좌는 선산김씨 시조인 화의군(和義君) 김기(金起)의 고손(高孫)이다.
점현재 는 1527년(중종 22)에 처음 지어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1998년에 중건하였다. 정면 5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며, 전면에 경앙문(敬仰門)이라 편액한 3칸 규모의 산형대문(山形大門)이 세워져 있다. 재사(齋舍)의 평면은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2칸의 온돌방을 우측에는 1칸의 온돌방을 각각 연접시킨 후 전면에는 반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다. 내부 대청에 점현재중건기(店峴齋重建記), 점현재중건상량문(店峴齋重建上樑文), 점현재중건기(店峴齋重建記) 등의 편액이 걸려있다.
[서산 세덕사(西山 世德祠)]
1791년 건립한 서산 세덕사는 입향조인 참판 김광좌와 그 아들 6형제 진락당 취성(就成), 별제공 취기(就器), 교위공 취연(就硏), 찰방공 취련(就鍊), 문간공 취문(就文), 참봉공 취빈(就彬)의 덕을 기리며 제사를 받들어 모시는 건물이었다.
이 후 1868년(고종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어 그후 제단을 만들어 제사를 모셨다. 1983년 7월 단 앞에 서산 세덕사 유허비를 세웠다.
1791년에 8대손인 칠암 김몽화가 찬(撰)한 서산세덕사상량문(西山世德祠上樑文)이 전해온다.
[서산재(西山齋)]
서산재 는 선산김씨 23세인 진락당(眞樂堂) 김취성(金就成)이 건립하여 아우 5형제와 더불어 강학하던 곳이다. 진락당 김취성은 원호리 입향조인 김광좌의 6형제 중 맏이로서 평생 벼슬에 나가지 않고 고을에서 의학으로 덕을 쌓은 인물이다.
서산재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1900년에 만든 서산재중건기(西山齋重建記)를 보면 “임진왜란에 불타버리고 황폐한 것이 수백년에 이르렀다.”라는 내용과 진락당 김취성이 건립하였다는 것을 보면 16세기 중반에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1868년(고종 5)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1900년에 중건하였다가 1985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중수하였다.
건물의 구조는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어칸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1칸씩을 두었다. 전면에는 반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다.
내부에 서산재중건기(西山齋重建記) 1900년, 서산재중수기(西山齋重修記) 1943년, 서산재중건기(西山齋重建記) 1947년, 서산재중수상량문(西山齋重修上樑文) 1960년, 서산재중건상량문(西山齋重建上樑文) 1985년 등의 편액 5개가 걸려있다.
[충렬재(忠烈齋)]
원호2리 웃골에 있는 재실로 대월재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택지개발로 2009년 대월재, 원모재와 함께 원호리 산 141번지로 이전하였다. 선산김씨 24세인 증이조판서 김종무(金宗武)를 추모하는 재사이다. 그는 임진왜란시 사근도찰방으로 있었는데 상주 북천에서 순변사 이일과 함께 왜군들과 싸우다 순절하였다. 그가 순절한 임진왜란 400주년을 맞아 추모 현창사업의 일환으로 상주 충렬사가 복원되고 순국비가 수립되어 상주 북천에 있던 충렬단을 선산 금오산 백운대하로 이건하였다. 1995년에 고향마을인 원호리에 충렬재를 세웠다.
재실 구조는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인데, 주위에는 토석담장을 둘렀으며 전면에는 3칸 규모의 산형대문(山形大門)을 세웠다. 평면은 어칸의 3칸 마루방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1칸씩을 두었고, 전면에는 반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으며, 배면을 제외한 3면에 계자난간을 둘렀다.
내부에 충렬재기(忠烈齋記), 충렬재상량문(忠烈齋上樑文), 충렬재 연혁(忠烈齋 沿革)등의 편액 3개가 걸려있다.
2007년 3월 31일에 판서공파 종중 정기총회를 하였다.
[원모재(遠慕齋)]
원호2리 웃골 대황산 서쪽 기슭에 있으나, 대월재, 충렬재와 함께 2009년 원호리 산 141번지로 이전하였다. 문간공 취문의 후손인 모당공 형건(1719~1785) 공이 1772년(영조 48)에 선조의 제사와 손님을 접대하고 후손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건물이며, 1996년 중창하였다.
재실구조는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주위에는 토석담장을 둘렀으며 전면에 3칸 규모의 산형대문(山形大門)을 두었다. 평면은 어칸의 2칸 마루방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각 1칸씩을 두었고, 전면에는 반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다.
내부에 원모재중건상량문(遠慕齋重建上樑文)이 걸려있다.
[칠암재(七巖齋)]
원호1리 원당골에 위치하고 있다. 한성부(漢城府) 좌윤(左尹)을 지낸 칠암(七巖) 김몽화(金夢華)의 재실이다. 그는 아버지는 만와(晩窩) 김유수(金裕壽)로 형 남고(南皐)·아우 탕촌(碭村) 등 4부자가 진사(進士)로서 사림의 칭송을 받았다.
7세손인 김영록(金榮祿)이 건립하였다. 영화문(永華門)이라 편액한 3칸 규모의 산형대문(山形大門)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좌우측에는 부속채를 두었으며, 정면에 칠암재가 자리잡고 있다.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어칸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1칸씩을 두었다. 전면에 반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으며 퇴칸의 전면에는 각 칸마다 유리창문을 설치하였다.
내부에 1952년에 만든 칠암재기(七巖齋記) 현판이 있다.
[성자재(聖子齋)]
원호2리 점터에 있는 증이조참판 김창호(金昌昊)를 추모하는 재실이다. 김창호는 선산김씨 32세손으로 만와 김유수의 증손(曾孫)이다. 어린시절부터 문장과 효가 깊었으나 1862년(순조 26) 향년 4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90년에 5대손인 김교순 씨를 비롯한 후손들에 의해 재실이 건립되었다.
성자재 의 구조는 재실 주위로 방형의 블록담장을 둘렀으며 전면에 여재문(如在門)이라 편액한 3칸 규모의 산형대문(山形大門)을 세웠다. 재실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며, 평면은 어칸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1칸씩을 두었다. 전면에 반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으며, 퇴칸의 전면에 각 칸마다 4짝의 유리창문을 설치하였다.
내부에 성자재기(聖子齋記), 성자재상량문(聖子齋上樑文), 성자재창건기(聖子齋創建記)가 걸려있다.
[원당재(元堂齋)]
선산김씨 26세 원당(元堂) 김언(金漹)과 사복시정(司僕侍正) 김상주(金相冑)를 추모하는 재실이다. 김언의 조부는 참판공 김종무(金宗武)이며, 부는 욕담공 김공(金羾)이다. 원당공은 자손이 번성하여 대과급제가 대대로 이어졌다. 재실은 1994년 건립하였다.
만산정 과 토담을 경계로 이웃하고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팔작기와집이다. 어칸의 2칸은 마루방이며, 좌측 2칸과 우측 1칸은 온돌방이다. 전면으로 퇴칸을 두었으며, 각 칸마다. 유리창문을 설치하였다.
내부에 원당재기(元堂齋記)와 원당재상량문(元堂齋上樑文) 편액이 걸려있다.
2007년 3월 25일 원당공파 종중 정기총회를 하는 종중의 업무와 관련하여 활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