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A030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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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해평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재호 |
군위댁은 올해(2007년) 76세로 군위군 소보면 율리 사리2동 흔히 새기터라 불리는 곳이 친정이다. 성씨는 은씨이며, 이름은 대전(大田)으로 충청남도 도청소재지와 이름이 같아 사람들이 한 번 들으면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19세에 선산김씨인 남편 김영동(金泳東) 씨에게 시집왔다. 남편은 네 살 위였는데 11년 전 작고하였다. 세시풍속을 비롯하여 마을의 이모저모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
시집와서 보니 시집에서는 일꾼을 데리고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논매기를 할 때 군위에서와는 달리 저녁식사 대접이 전혀 없어서 아주 편하다는 생각을 하였다고 한다. 자식은 딸 아들 둘을 두었고, 지금은 혼자 살고 있지만 논 20마지기와 밭 10마지기를 경작하고 있다.
군위댁이 거주했던 집 뒤에 낙남(洛南) 최산휘(崔山輝, 完海君)의 불천위 사당이 있었는데, 이 사당을 군위댁이 10여 년 넘도록 돌보았다고 한다. 사당 주변의 땅은 경매를 통해 불하되었는데, 살던 집이라 땅을 새 주인으로부터 다시 매입하여 집도 새로 지은 상태였었다. 그래서 반드시 사당을 돌보아야 할 의무가 없었으나 오랫동안 돌보아 오던 것이라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은 계속 돌보겠다고 뜻을 비추었다고 한다. 비록 남의 조상이지만 이웃 어른들도 잘 돌보면 좋다는 옛말을 교훈삼아 사당지기를 자처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 최산휘의 신주 등 기물은 근처의 쌍암고택 내 사당으로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