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A030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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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해평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재호 |
『선산부읍지(善山府邑誌)』의 ‘인물 고려조’에는 김훤술을 “본관이 해평(해평인)이다. 태조(太祖)를 도와 공을 세워 지위가 시중(侍中)에 이르렀다. 시호(諡號)는 장렬공(莊烈公)이다.”라고 적고 있다. 그는 일찍이 마을 주민들이 성황사에 안치하여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왔다. 그 흔적이 아직까지 전해지고 있는데, 지금도 김훤술 석상은 마을 뒷개숲의 시중사(侍中祠)에 모셔져 있으며 군위군 군위읍 정동(政洞) 일대에 세거하던 종파(宗派)들에 의해 1973년 8월 26일 고유식(告由式)과 더불어 신도비(神道碑)가 세워졌다. 1년에 한 차례씩 본손들이 참례를 비롯한 제향행사를 갖는다. 『일선지(一善誌)』에는 시중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해평 성황사 일명 시중사(侍中祠)이다. 장렬공(莊烈公) 김훤술(金萱術)이 공덕이 있다고 하여 현인(縣人)이 석상(石像)을 만들어 제사지냈다. 뒤에 음사(陰祀)가 되어 드디어 폐하고 제사지내지 않았다.
『일선지(一善誌)』에서는 김훤술 석상에 올리는 제사를 음사라 하여 국가에서는 제도적으로 제사를 폐하였다고 하지만, 민간에서는 최근까지도 지속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석상에 대한 영험성은 주민들에게 여러 가지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이 이 석상에 제사를 정성껏 모시면 효험이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김훤술 석상에 대한 믿음은 적어도 1970년대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