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28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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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尙娘傳 |
영어의미역 | Biography of Sangna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영호 |
성격 | 전(傳)|전기|인물전|열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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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이옥(李鈺, 1760~1812) |
창작연도/발표연도 | 조선 후기 |
[정의]
조선 후기 이옥이 구미 지역의 열녀 상낭박씨의 절개를 칭송하며 쓴 전기.
[개설]
이옥은 조선 후기의 문인으로 자는 기상(其相), 호는 문무자(文無子)·매사(梅史)·매암(梅庵)·경금자(絅錦子)·화석자(花石子)·청화외사(靑華外史)·매화외사(梅花外史)·도화유수관주인(桃花流水館主人)이다. 평민 여성 상낭이 절개를 지켜 죽은 일은 조선 후기 선비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쳐 많은 문사들이 상낭의 이야기를 시와 전(傳)으로 기록하였는데 「상낭전」도 그중 하나이다.
[구성]
전반부에서는 위나라 공백의 아내인 강씨의 예를 들어 열녀가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을 이야기하였고, 중반부에서는 조선의 많은 열녀 중 영남 상주의 상낭박씨의 이야기를 자신이 전하는 형식으로 이야기하였으며, 후반부에서는 여자들이 배워야 할 법도를 설명하면서 세속의 여자들을 비판하며 상대적으로 상낭의 절개를 높이 칭송하였다.
[내용]
열녀 상낭박씨는 영남 상주 사람으로 경상북도 구미시의 선산최씨에게 시집을 갔으나 쫓겨났다. 친정어머니와 형제들의 뜻에 따라 상낭박씨는 다시 최씨 집으로 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낙심하여 낙동강에 빠져 죽기로 하였다. 이때 시집가지 아니한 나무하는 아이와 마주친 상낭박씨는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다리를 풀고 신발을 벗어 증거로 남기고 「산유화」 한곡을 부른 뒤 “하늘은 높고 땅은 넓은데, 가련하다 이내 몸은 갈 곳이 없어라! 남편은 내게 마음 주지 않고 시어머니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으니, 슬픔으로 가득한 이내 마음 죽지 않고 어찌하리?”라고 말하며 마침내 치마를 뒤집어쓰고 물에 뛰어들었다. 그 후 소식을 접한 최씨와 친정 식구들이 후회하며 찾으니 물 위에 고려의 충신비가 떠 있었다.
[의의와 평가]
「상낭전」은 바탕이 순수한 사람은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운 법이라 말하며, 평민 여성의 순박한 성정을 배워도 지키지 못하는 세속의 여자들과 비교하여 상낭박씨의 절개를 칭송하고 있다. 또한 「상낭전」이 평민 여성의 절개를 이야기하고는 있으나 첫머리를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하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忠臣不事二君, 烈女不更二夫).’로 시작한 것, 또 물 위에 고려의 충신비가 있었다는 내용으로 보아 여성의 순박한 절개를 칭송하면서 동시에 고려의 충신 야은 길재의 유풍을 부각시킨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