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28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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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鳳下樓序 |
영어의미역 | Preface of Bongharu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완전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영호 |
성격 | 변려문|서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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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조찬한(趙纘韓, 1572~1631) |
창작연도/발표연도 | 1630년(인조 8) |
[정의]
1630년(인조 8) 조찬한이 선산부사로 있을 때 지은 변려체 서문.
[개설]
조찬한(趙纘韓, 1572~1631)은 조선 후기 때의 문신으로 자는 선술(善述), 호는 현주(玄洲)이다. 문장에 뛰어나고 특히 부(賦)에 능하였다. 조찬한은 1629년(인조 7)에 선산부사로 부임하였는데, 죽기 1년 전인 1630년(인조 8) 자신이 직접 건조한 누각에 덧붙여 4·6 변려체 서문인 「봉하루서」를 지었다.
[내용]
조찬한이 선산부사로 있을 때 봉하루(鳳下樓)를 찾아 지은 사륙변려체로 쓴 기문으로 봉하루의 지형적 입지와 누각의 구조와 주위 환경 등을 자세히 기술하였다. 특히 봉하루를 당나라 등왕각에 비유하며 뛰어난 승경을 읊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특징]
대구(對句)가 존중되고 4자·6자 구를 의식적으로 구사하며, 평측(平仄)과 압운(押韻)을 존중하고 음조의 미를 살리며, 전고(典故) 사용을 존중해 화려한 미문 의식을 높이는 것이 변려문의 총체적 특징인데, 「봉하루서」는 변려문의 이러한 특징을 잘 살린 작품이다.
[의의와 평가]
이식(李植)의 『현주집(玄洲集)』 서문에 의하면 조찬한의 문장을 “변려체의 글은 서릉(徐陵)과 유신(庾信)의 성조를 깊이 터득하였고 장편(長篇)과 광운(廣韻)의 시는 두보(杜甫)·한유(韓愈)와 나란히 견주어도 남음이 있다.”고 하였다. 이외에 서문 「보만정서(保晩亭序)」나 「추송구완서(追送九畹序)」, 「삼호정서(三湖亭序)」 등은 모두 이정구(李廷龜), 이춘원(李春元), 이경석(李景奭) 등이 조찬한에게 변려문을 굳이 요청하여 지었다는 자주(自註)가 달려 있어 당시 조찬한이 변려체 문장에 뛰어난 인물 중 하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