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28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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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洛東謠 |
영어의미역 | Poem of Nakdong River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석배 |
성격 | 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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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김종직(金宗直, 1431~1492) |
창작연도/발표연도 | 조선 전기 |
[정의]
조선 전기 김종직이 구미 지역의 낙동강을 보고 지은 한시.
[개설]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은 조선시대의 성리학자이자 문신이다. 자는 계온(季昷), 호는 점필재(佔畢齋)이다. 1459년(세조 5) 문과에 급제하고, 형조판서·지중추부사 등의 벼슬을 지냈다. 문장과 경술이 뛰어나 영남학파의 종조(宗祖)가 되었다. 저서에 『점필재집(佔畢齋集)』·『청구풍아(靑丘風雅)』 등이 있다. 「낙동요」는 『점필재집(佔畢齋集)』 제5권에 수록되어 있는 민요풍의 한시로, 영남 지역은 서울의 권신들 때문에 수난을 당하는 고장이라는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구성]
「낙동요」의 서두에서는 낙동강의 근원에 대해 말하고 있고, 강이 흐름에 따라 차차 물이 불어나 바다에 이르기까지 뱃길을 이루는 광경을 차례로 묘사하고 있다. 절정 부분에서는 서울 관원들의 가렴주구 때문에 남도 백성들이 수난을 당하는 참상을 그리고 있다. 말미에서는 고향을 찾았으나 흥이 나지 않아 노래를 부르며 기둥에 기대어 서 있으니 갈매기가 비웃는다 하였다.
[내용]
황지의 근원은 겨우 잔이나 넘칠 정도인데/ 여기까지 흘러와서는 어이 그리 벌창한고/ 한 물이 육십 주를 가운데로 나누었으니/ 나루터 몇 곳이나 돛대가 연하였는고/ 해문까지 곧바로 사백 리를 내려가면서/ 순풍을 따라 왕래하는 상인들을 나눠 보내네/ 아침에 월파정에서 출발하여/ 저녁에는 관수루에서 자는데/ 누각 아래 배에다가 천만 꿰미 돈을 실었으니/ 남도 백성들이 이 가렴주구를 어이 견디어 내리/ 쌀독이야 진작 비고 도톨이밤마저도 떨어졌는데/ 강가 정자에서는 노랫소리에 살진 소를 잡는다/ 나라의 사자들이 유성 같이 지나는데/ 길가의 해골이야 누가 이름이나 물어보랴/ 왕손초에 소녀풍이 불어라/ 아지랑이 아른아른 꽃다운 물가에 희롱하니/ 멀리 바라보는 눈에 나는 새가 들어오네/ 고향의 꽃구경할 일이 이내 새로워졌건만/ 흉년은 노니는 사람을 돌보지 않는구나/ 기둥 기대고 소리 높여 노래하니/ 문득 봄 흥취 인색함을 깨닫겠네/ 백구는 나를 비웃으려 하누나/ 바쁜 듯도 한가한 듯도 한 것을/
(黃地之源纔濫觴 奔流到此何湯湯 一水中分六十州 津渡幾處聯帆檣 海門直下四百里 便風分送往來商 朝發月波亭 暮宿觀水樓 樓下綱船千萬緡 南民何以堪誅求 缾甖已罄橡栗空 江干歌吹椎肥牛 皇華使者如流星 道傍髑髏誰問名 少女風王孫草 遊絲澹澹弄芳渚 望眼悠悠入飛鳥 故鄕花事轉頭新 凶年不屬嬉遊人 倚柱且高歌 忽覺春興慳 白鷗欲笑我 似忙還似閑)
[의의와 평가]
「낙동요」는 전체적으로 현실감이 생동하는 한시로, 특히 서울 관원들의 가렴주구를 직접적으로 비판한 작품이다. 김종직도 서울의 벼슬아치 중 하나였지만, 남도 백성들의 고난에 마음으로나마 동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