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28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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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過金烏山-南孝溫- |
영어의미역 | Passing the Geumosan Mountai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영호 |
성격 | 한시|고시|칠언 고체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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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남효온(南孝溫, 1454~1492) |
창작연도/발표연도 | 조선 전기 |
[정의]
조선 전기 남효온이 구미 지역의 금오산 등지를 지나며 지은 한시.
[개설]
남효온은 조선시대의 생육신으로 자는 백공(伯恭), 호는 최락당(最樂堂)·추강(秋江)·행우(杏雨)·벽사(碧沙)이다. 김종직에게서 학문을 배우고 김굉필·정여창·김시습 등과 가까이 지냈다. 세조에 의하여 물가에 이장된 단종의 생모 현덕 왕후의 소릉(昭陵)을 복위하기 위해 상소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실의에 빠져 각지를 유랑하다 병사하였다.
1504년(연산군 10) 소릉복위소(昭陵復位疏)로 인하여 부관참시(剖棺斬屍)되어 집안 사람들이 남효온의 유고를 재앙의 빌미가 될까 염려하여 소각했기 때문에 남효온의 시문은 약간만 남게 되었는데, 그중 한 편이 「과금오산」이다. 「과금오산」은 남효온이 구미 지역의 금오산을 지나면서 야은 길재(吉再, 1353~1419)를 추모하고, 자신의 비조인 남재(南在, 1351~1419)를 추념한 영찬시(詠讚詩)로 『야은집(冶隱集)』에도 실려 있다.
[구성]
「과금오산」은 칠언 고체시로 총 28구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전반후에서는 가을 서릿발 같이 맑은 물처럼 유리와 같은 야은 길재의 충절을 백이·숙제와 비교하여 예찬하고, 금오산 아래 선산을 지나면서 그곳의 전원이 난초밭을 이루어 북쪽의 풍속을 교화시키고 영남 지역에 명사가 많음을 읊고 있으며, 후반부에서는 남효온의 비조인 남재의 미덕이 오래도록 선산에 남아 있어 유풍이 자신의 귓가에 여전히 남아 있으니 안일하고 헛된 것을 끊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秋深百川明琉璃 霜摧萬樹紅錦綺 辛朝注書吉冶隱 秀於嚴霜淸於水 大節銘在蒼生口 烏山截空一百祀 武王革命天眷隆 夷何爲哉而獨恥 鴻毛命輕義重山 公與達可知此理 達可身經二姓王 杞梓寸朽鑑中玼 公身所委惟一君 眞知獨行誰與比 漢家更崇角里生 周王義不臣箕子 茲山之下賜骸骨 田園九畹滋蘭蕙 西河風俗化子方 至今嶺南多名士 念我鼻祖龜亭公 先生德美談舋舋 監司此道作家廟 遺說亦在長老耳 曾於家訓飽聞之 匹馬短童過故里 屬余斷酒安用酹 作詩招魂而翦紙)
[특징]
「과금오산」은 칠언 고체시의 영찬시로, 고시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운자에 얽매이지는 않았다.
[의의와 평가]
「과금오산」은 야은 길재의 충절을 가을 서리와 유리 같은 맑은 물에 비유하였으며, 백이·숙제의 고사 등 사물과 전고를 인용한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남효온 선대에 대한 찬미를 덧붙여 부각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