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2842 |
---|---|
한자 | 高應陟-時調 |
영어의미역 | Sijo of Go Eungcheok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문량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석배 |
성격 | 시조 |
---|---|
작가 | 고응척(高應陟, 1531~1605) |
창작연도/발표연도 | 조선 전기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북도 구미시 출신의 고응척이 지은 시조.
[개설]
고응척은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시인으로, 자는 숙명(叔明), 호는 두곡(杜谷)·취병(翠屛)이다. 1531년(중종 26)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문량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신동이라 불렸으며, 스스로 공부하여 한글로 교훈시 70여 수를 짓기도 하였다. 벼슬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으며, 많은 글과 시를 쓰고 후배 교육에 전념하였다.
시가문학사에서 볼 때 고응척은 이현보(李賢輔, 1467~1555), 권호문(權好文, 1532~1587), 박인로(朴仁老, 1561~1642) 등과 더불어 영남가단을 형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고응척이 지은 시조 28수는 『두곡집(杜谷集)』상권 곡(曲) 부분에 수록되어 전한다.
[구성]
고응척의 시조는 「대학장구(大學章句)」를 시조화한 것(1~25수)과 「마자재가(馬子才歌)」를 번역한 것(「호호가(浩浩歌)」 26~28수)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
「대학곡(大學曲)」·「입덕곡(入德曲)」·「명명덕곡(明明德曲)」·「신민곡(新民曲)」·「지선곡(至善曲)」·「군자곡(君子曲)」·「소인곡(小人曲)」·「격치곡(格致曲)」·「성의곡(誠意曲)」·「정심곡(正心曲)」·「수신곡(修身曲)」·「제가곡(齊家曲)」·「치국곡(治國曲)」·「평천하곡(平天下曲)」·「천지일가곡(天地一家曲)」·「인지곡(仁智曲)」·「당우곡(唐虞曲)」·「연어곡(鳶魚曲)」·「연연곡(然然曲)」·「주야곡(晝夜曲)」·「마석곡(磨石曲)」·「유무곡(有無曲)」 등 25수는 「대학장구(大學章句)」를 시조화한 것이고, 「호호가(浩浩歌)」 3수는 「마자재가(馬子才歌)」를 번역한 것이다.
제1수인 「대학곡(大學曲)」은 “ 권 대학책(大學冊)이 엇디야 됴 글고/ 나 살고 사니 긔 아니 됴 글가/ 나 속고 소긴 그리아 닐어 므슴료”이고, 「호호가(浩浩歌)」 제3수는 “천지만물(天地萬物)이 엇디 야 삼긴 게고/ 옥당금마(玉堂金馬) 어듸만 인뇨/ 설산석실(雪山石室)이 간마다 노플 세고/ 구프려 바 가니 이야 젹다마/ 울워러 람 부니 하리 무하다/ 내 비즌 말 술 벋님과 새다/ 이삼월(二三月) 춘풍(春風)은 푸메 엿거/ 구시월(九十月) 단풍(丹楓)은 오라/ 아마도 취리건곤(醉裏乾坤)을 너와 나와 놀리라”로 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고응척의 시조 가운데 앞의 25수는 고응척이 경도했던 「대학장구(大學章句)」를 알기 쉬운 시조형에 담아 항상 외우고 읊게 하여 백성들을 교화시키고, 후학으로 하여금 눈을 뜨게 하려는 의도에서 쓰여진 교훈 시조이다. 그리고 「마자재가(馬子才歌)」를 번역한 「호호가(浩浩歌)」는 은사(隱士)로서 안빈낙도를 누리는 즐거움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술에 취하면 동자로 하여금 창으로 부르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