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2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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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命峻旌閭扁額 |
영어의미역 | Jeongryeo Plaque of Yi Myeongjun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 산 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광수 |
성격 | 편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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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시기/일시 | 1846년 |
제작지역 | 구미시 봉곡동 |
재질 | 목재 |
높이 | 25㎝ |
너비 | 156㎝ |
소장처 | 경상남도 구미시 봉곡동 산 9 |
소장처 주소 | 구미시 봉곡동 산 9 |
소유자 | 벽진이씨 종중 |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이명준(李命峻)의 정려편액.
[개설]
이명준은 벽진인(碧珍人)으로, 자는 성중(性中), 호는 성괴재(省愧齋)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효행이 탁이하여 부모를 지성으로 봉양했다. 부친이 별세하자 묘소를 하루도 빠짐없이 3년 시묘하여 무릎 닿는 곳이 구덩이가 되고, 절한 곳에 풀이 말라 죽었다고 한다.
부친 별세 후 34년간 노모를 위해 약탕관을 직접 시탕(侍湯)하여 극진히 봉양하였다. 모친상 삼우(三虞) 후 약탕 그릇이 저절로 깨졌는데, 효성에 의함이라 한다. 후에 이명준이 별세한 뒤 1844년(헌종 10) 12월에 조봉대부사헌부지평에 증직되었고 1846년(헌종 12) 정려를 받았다.
[형태]
구미시 봉곡동 백원각(百源閣) 내에 걸린 높이 25㎝, 너비 158㎝의 편액으로 ‘효자증조봉대부사헌부지평이명준지문(孝子贈朝奉大夫司憲府持平李命峻之門)’, ‘상지십년십이월일증직십이년십일월일명정(上之十年十二月日贈職十二年十日月日命旌)’이라 각자되어 있으며, 서체는 해서체로 글자의 크기는 7×7㎝이다.
[특징]
사망한 지 2년 후 정려편액이 조성되어 백원각 내에 보존되었으며, 묘소는 벽진이씨의 집성촌인 별남[星南]마을 앞산에 현존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봉곡동에 세거한 벽진이씨(碧珍李氏) 일문의 역사와 조선시대 충효열(忠孝烈)에 바탕을 둔 유교의 영향력, 효자 이명준의 효행 사실이 지역 사회에 영원한 사표가 되므로 그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