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20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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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義牛塚碑 |
영어의미역 | Monument of Faithful Cow |
이칭/별칭 | 봉곡동 의우총비(義牛塚碑)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광수 |
성격 | 석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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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규형비(圭形碑) |
건립시기/일시 | 1867년 8월 |
관련인물 | 진숙발 처 밀양박씨(密陽朴氏) |
재질 | 사암(沙巖) |
높이 | 105㎝ |
너비 | 40㎝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 |
소유자 | 구미시 |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 있는 조선 말 의우총(義牛塚) 비.
[개설]
의우총은 짐승으로서 의행(義行)을 한 소의 무덤이다. 조선 말기 봉곡 지역에 거주한 여양인(驪陽人) 진숙발의 처 밀양박씨는 빈곤한 처지에 일찍이 과부가 되었다. 이러한 형편에 암소 한 마리를 길러오던 중 송아지를 낳은 지 불과 사흘 만에 불행히 어미 소가 죽고 말았다.
밀양박씨는 어미를 잃은 송아지를 불쌍히 여겨 그대로 놓아두면 죽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밀양박씨는 흰죽과 나물죽을 끓여 손에 발라 송아지로 하여금 핥게 하였다. 간혹 보리죽도 먹여가며 근근이 어린 송아지를 키우자 송아지는 무럭무럭 자랐다.
그 후 송아지는 소로 성장하여 2년 동안 밀양박씨와 함께 논밭을 경작하였다. 밀양박씨는 늙어 세상을 떠나기 전 소를 개령(開寧) 사람에게 팔았다. 밀양박씨의 장례를 지내는 날 상여가 출발하려 할 때 우리를 뛰어넘은 암소 한 마리가 난데없이 30리 길을 달려와 상여 앞에서 눈물을 흘리더니 미친 듯이 부르짖고 날뛰다가 상여 앞에서 죽고 말았다.
이것을 본 마을 사람들은 소의 기특함과 기이함에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 의행(義行)은 인간의 충의(忠義)에 못지않은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사람과 짐승이 다르나 그 의(義)는 같아 기이하게 여겼다. 이리하여 죽은 소를 밀양박씨의 무덤 아래에 장사하고, 표석(表石)을 세웠는데, 바로 의우총비이다.
[건립경위]
자신을 길러준 옛 주인에 대한 의열(義烈)이 인간의 충의(忠義)에 못지않아 의를 행하고 순사한 의로운 소의 의행(義行)을 기념하기 위하여 1867년(고종 4) 무덤을 마련하고 비를 세웠다. 구미시 봉곡동 미실산 아래에 있었으나 현재는 이명준 정려각 앞에 새로 조성되어 있다.
[형태]
자연석을 판석으로 치석하여 상부를 귀접이한 규형비(圭形碑)로, 높이는 105㎝, 너비 40㎝, 두께 9㎝의 사암(沙巖)으로 조성한 비이다.
[금석문]
비의 앞면에는 ‘의우총(義牛塚)’이라 새겨져 있고, 건비 연대에 대해 ‘정묘팔월일립(丁卯八月日立)’이라 각자하여 놓았다. 서체는 해서체(楷書體)이다.
[현황]
구미시 봉곡동 미실산에 직경 1.6m 정도의 봉분과 표석이 함께 남아 있었으나 주거 단지 개발로 인하여 봉분은 없어지고, 다만 표석은 도시 계획에 의한 구획 정리 작업으로 봉곡동 녹지 지구 솔밭에 옮겨져 있다가 다시 자리를 옮겨 현재는 이명준 정려각 앞에 재조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옛 주인에 대한 소의 의행(義行)을 사실적으로 기술한 『사실재읍지(事實在邑誌)』와 현존하는 표석(表石)이 그 역사적인 사실을 전해주고 있어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