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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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試券 |
영어의미역 | Answer Papers of Examination during the Joseon Dynasty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우인수 |
[정의]
경상북도 구미 지역의 과거시험 응시자들이 제출한 답안지 또는 채점지.
[개설]
시권은 시지(試紙) 또는 명지(名紙)라고도 한다. 시권의 종류는 시험의 종류에 따라 제술(製述) 시권, 강서(講書) 시권, 사자(寫字)·역어(譯語) 시권으로 나누어진다. 제술은 문장 구사 능력과 대체의 요점을 파악할 수 있는 인물을 선발하는 시험으로서 시(詩)·부(賦)·송(頌)·책(策) 등을 시험하였다. 따라서 제술 시권은 시험 과목이나 내용에 관계없이 응시자 자신이 스스로 창안해서 작성하는 논술시험 답안지이다. 글을 시권에 쓴다는 의미에서는 잡과(雜科)의 사자(寫字) 시권과 같은 성격을 지니지만, 사자가 단순히 출제 부분의 내용을 베껴 쓰는 데 비하여 제술은 응시한 당사자가 새로운 글을 창안했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제술 시권에 기재되는 내용은 크게 응시자 본인이 기록한 것과 시관(試官) 내지 사관(四館)에서 기록한 것 등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응시자가 녹명(錄名)하기 전에 시권에 기재하는 사항으로는 응시자 본인의 직역(職役)·성명·나이·본관·거주지, 부·조·증조·외조의 직역과 성명·본관이 있었다.
시관이나 사관(四館)에서 기록·확인하는 사항은 자호(字號), 과차(科次)와 점수, 등수, 근봉(謹封) 여부, 착인(着印)이었다. 이 가운데 자호는 천자문 순으로 연번호를 매기되, 천자문 위에 일(一)·이(二)·삼(三)·사(四)까지의 숫자를 써 넣어 관리하는 데 편하도록 하였다. 자호의 기재 방법은 시대에 따라 약간씩 달랐지만 대개의 경우 봉미(封彌)한 시권을 뜯기 전에 답안 부분과 봉미 부분의 오른쪽 중간에 큰 글씨로 자호를 매기고 아울러 답안 부분과 봉미 부분의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같은 자호를 매겼다. 그런 다음 오른쪽 중간의 자호 부분을 오려내어 합격자가 결정될 때까지 따로 보관했다가 당락이 결정되면 그 합격 시권의 봉미 부분을 붙였다.
시험 점수는 시대마다 조금씩 달랐으며 대개 붉은 글씨로 기록하였다. 등급은 9등 내지 12등급이 있으며, 일지상(一之上)·일지중(一之中)·일지하(一之下), 이지상(二之上)·이지중(二之中)·이지하(二之下), 삼지상(三之上)·삼지중(三之中)·삼지하(三之下), 차상(次上)·차중(次中)·차하(次下), 갱(更)·불(不) 등으로 표시하였다. 과차(科次)는 과거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등급을 일지일(一之一)·일지이(一之二)·일지삼(一之三), 이지일(二之一)·이지이(二之二)·이지삼(二之三), 삼지일(三之一)·삼지이(三之二)·삼지삼(三之三) 등으로 기재하였다.
시험이 끝나고 그 결과가 발표되면 시권은 합격 시권과 낙방 시권으로 분류되었다. 합격 시권은 뒤에 합격 증서인 홍패(紅牌)·백패(白牌)와 함께 영광의 상징으로서 본인에게 돌려 주었다. 그러나 합격하지 못한 시권, 즉 낙방 시권은 일괄적으로 호조에 옮겨져 여러 가지 용도로 쓰였다.
[내용]
구미 지역에는 조선시대 구미 사람들의 시권도 여러 점이 있다. 장석능(張錫能)이 생원시 2등 제22인에 입격한 시권을 위시하여 1869년(고종 16) 진사시에 3등 제17인으로 입격한 이인화(李麟和)의 시권, 박수홍(朴守弘)의 생원시 시권, 박중휘(朴重輝)의 생원시 시권, 박증휘(朴增輝)의 문과시 시권, 박학령(朴鶴齡)의 진사시 시권, 박춘보(朴春普)의 진사시 시권, 박선호(朴善浩)의 생원시 시권과 문과시 시권 등이 남아 있어 과거 시험 연구에 좋은 참고가 된다.
1. 이인화 시권
1879년(고종 16) 이인화(李麟和, 1849~?)가 소과에 응시할 당시 작성한 시권이다. 이인화는 1879년(고종 16)에 실시된 식년시에서 진사 3등 17인으로 입격하였다. 이인화는 1849년생으로 본관은 벽진(碧珍)이며 선산(善山)에 거주하고 있다.
2. 박중휘 시권
유학 박중휘(朴重輝, 1622~?)가 17세에 생원 시험에 응시하여 작성한 시(詩), 부(賦)의 답안지이다. 이 시험에서 박중휘는 생원 3등 제27인으로 입격하였다.
3. 박학령 시권
유학 박학령(朴鶴齡)이 36세에 진사 시험에 응시하여 작성한 답안지이다. 이 시험에서 박학령은 진사 2등 차하로 입격하였다.
4. 박선호 시권
1782년(정조 6) 광릉참봉 박선호(朴善浩, 1748~?)가 36세에 식년 문과에 응시하여 작성한 답안지이다. 박선호는 밀양인으로 경주부윤 박수홍(朴守弘)의 8세손이며, 청산현감 박천의(朴天儀)의 아들이다. 1748년(정조 24) 4월 20일에 태어났고, 1777년(정조 1)에 진사 시험에 합격하였다. 1782년(정조 6)에 음사(蔭仕)로 아산현감과 문의현령을 거쳐 풍기군수를 역임하였다. 1816년(순조 16) 69세로 사망하였다. 사후에 삼자(三子) 박내겸(朴來謙)이 높은 벼슬에 올랐기에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묘는 봉곡동 다봉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