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988 |
---|---|
한자 | 道中里寺址 |
영어의미역 | Temple Site in Dojung-ri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도중리 8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이희돈 |
성격 | 사지 |
---|---|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통일신라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도중리 8 |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도중리 절골에 있는 통일신라 때의 절터.
[개설]
도중리 절골의 산록에 있는 사지이다. 사지에서 남쪽 100m 떨어진 지점에 석탑 1기가 있다. 이 석탑에 관하여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 “산동면 도중동 탑은 현재 1층만 남아 있으며, 다른 부근에 추락하였다. 현재 높이는 4척 5촌 5중으로 추정된다. 부근에 두부가 결손된 높이가 1척5촌의 석불좌상 1구가 현존한다(山東面 道中洞 塔ハ 現時 一層オ殘ス ノミニツテ 他ハ 附近ニ 墜落ス 現高 四尺五寸 五重ト 推セラル 附近ニ頭部缺損スル 高サ 一尺五寸ノ 石佛坐像一軀 現存ス)”라는 기록이 있다.
[변천]
높이 1.5~2.5m인 2단의 석축지와 원좌(圓座) 주초석이 있었다고 하며, 현재 이 원좌 주초석과 이곳에서 남쪽으로 100m쯤 되는 곳에 있었던 석탑 부재(지붕돌[옥개석])는 산동초등학교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위치]
도중리 마을에서 동쪽 계곡을 따라 1㎞쯤 올라가면 ‘절골’이라 부르는 계곡 북쪽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낮은 구릉이 있는데, 그 위에 사지가 남아 있다. 여기서 남쪽으로 약 100m되는 곳에 석탑 1기가 있어 이 일대가 큰 사찰 터인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현재 도중리 사지에 속해 있었던 경작지 내에는 초석 등 아무런 유물도 남아 있지 않으나 여기서 약 50m 떨어진 동쪽 언덕 위에 정교하게 조성한 원좌 주초석(圓座柱礎石)이 있다. 원좌 주초석은 장방형의 자연석으로 상면을 평평하게 다듬고 중앙을 둥글게 조각한 것인데 양식이나 치석 수법으로 보아 신라 때의 수작으로 짐작된다.
또한 석탑은 전부 파괴되어 버렸고, 기단과 지붕돌 하나만 남아 있다. 산재(散在), 혹은 파괴된 부재(部材)로 보아, 삼층, 또는 오층탑으로 추정된다. 이 탑에서 주목되는 것은 하층 기단이 4면으로서, 각 면 2구의 안상(眼像) 안에 각종 문양이 조각되었는데, 그 형태와 종류가 특이하다. 즉 서쪽 면에는 하나의 안상 안에 엎드린 사자와 비천상(飛天像)을 같이 조각하였으며, 남면과 북면에는 구름 무늬와 당초(唐草)를, 동쪽 면에는 안상 하부 중앙에 귀꽃문을 각각 조각하였다.
[현황]
지금 도중리 사지 일대는 경작지로서, 고와(古瓦), 청자편(靑磁片)이 산재하며, 동서 방향으로 2단의 석축지가 남아 있고, 이곳의 지형으로 보아 남향의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서쪽 면과 같이 석탑 기단 면석의 안상 내부에 사자와 비천 2구를 함께 조각한 예는 아직 조사된 것이 없다.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서는 남아 있는 석탑재가 오층석탑이라 추정하고, 석불 좌상 1구가 있다고 하였으나 석불은 없고, 현존 부재로 보아서 삼층석탑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이 석탑 주변에서 많은 와편이 수집되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 법당 등 건물이 있었음은 분명하나 위치는 현 상태에서 짐작할 수 없다. 이 부근을 발굴 조사하여 사역의 범위와 창건 연대, 경영 시기 등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