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3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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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丁景達 |
영어음역 | Jeong Gyeongdal |
이칭/별칭 | 이회(而晦),반곡(盤谷)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용만 |
[정의]
조선 전기 구미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영광. 자는 이회(而晦), 호는 반곡(盤谷). 아버지는 정몽응(丁夢鷹)이다.
[활동사항]
정경달(丁景達)은 1570년(선조 3) 문과에 급제하였다. 1591년(선조 24) 선산부사로 도임하였다. 1592년(선조 25) 4월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군과 군민을 독려하여 왜적 방어에 공을 세웠다. 4월 28일 상주가 함락되자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은 싸움을 포기하고 달아났다. 정경달은 잠시 몸을 피신한 후 흩어져 있는 관군과 군민을 모았다. 지략을 겸비한 군민 허설(許說)과 김유일(金惟一)로 하여금 금오산에 진을 치게 하고 종일 적과 싸워 많은 병기를 노획하였다.
8월에 서산 각암으로 출전하였으며 9월에 감사 학봉 김성일(金誠一)이 전공을 기리는 서찰을 보내왔다. 뒤이어 창석 이준(李埈), 백사 이항복(李恒福), 임당 정유길(鄭惟吉)이 의병을 일으켜 합세하니 10월 15일 선산 의병은 상주 죽현으로 옮겨 진지를 구축하고 지형과 지세를 가리며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17일에는 해평으로 의병 진지를 이동하였다.
11월에는 대둔사(大芚寺)로 이동하여 진지를 구축하였다. 이듬해 2월초에 이준 형제가 이끄는 의병과 합류하여 무등곡에서 적을 섬멸하고 4월에 금오산 도선굴로 돌아왔다. 5월에 김산(金山; 김천)에 주둔하니 일 년 간 적을 죽인 것이 수천 명이이었고 많은 병기를 노획하였다.
명나라 군의 영남 진격에 따라 각 고을에서 식량을 공급해야 하는데 고을마다 식량이 바닥이 났다. 그래서 정경달이 도선굴에 비축하여 두었던 양곡으로 일부 명나라 군사의 군량미로 충당하니 명나라 장수 유총병(劉總兵)이 식리장군(識理將軍)이라 하며 치하하는 글과 금빛 부채를 주어 선산 의병의 공적을 찬양하였다. 어사 윤경립(尹敬立), 순찰사(巡察使) 김근(金勤)이 선산 의병의 전공을 나라에 알려 크게 치하하는 서찰이 왔다. 선산의 의병 활동은 왜군을 위협하여 조령을 경유하는 주력 부대의 진출을 견제하고 후방을 교란하는 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