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3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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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田可植 |
영어음역 | Jeon Gasik |
이칭/별칭 | 미재(美哉),성암(省菴)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이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용만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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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이리 |
성별 | 남 |
생년 | 1365년 |
몰년 | 1449년 |
본관 | 연안 |
대표관직 | 예조판서 |
[정의]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미재(美哉), 호는 성암(省菴). 증조부는 문혜공(文惠公) 전귀생(田貴生), 할아버지는 전한(田漢), 아버지는 전무(田畝)이다.
[활동사항]
1399년(정종 1)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정헌대부 예조판서를 역임했다. 태종의 세자 시절에 세자와 유일지사(遺逸之士)를 논하게 되었을 때 전가식은 “길재(吉再)가 강직하고 집에서는 효행이 돋보였다”고 말하였다. 1401년(태종 1)에 상소하여 말하기를 “검소한 풍토를 솔선할 것이며, 안일과 탐욕을 경계할 것이며, 간언(諫言)을 받아들일 것이며, 희노를 함부로 하여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서장관(書狀官)과 정사(正使)로서 중국에 다녀왔다. 1449년(세종 31) 84세로 세상을 뜨자 세종이 슬퍼하며 예관(禮官)을 보내어 조상하게 하였다.
[상훈과 추모]
사후에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영의정(議政府領議政)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