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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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呂渭賢 |
영어음역 | Yeo Wih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용만 |
[정의]
고려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성주(星州). 시조는 당(唐)의 한림(翰林)을 역임한 어매(禦梅)로서 874년경 황소(黃巢)의 난을 피하여 신라로 왔다는 8학사(八學士) 중의 하나이다. 대광부군(大匡府君) 여양유(呂良裕)를 중시조로 한다.
[활동사항]
여위현은 경상도 성주성(星州城) 북쪽의 야동(冶洞)에 살았는데,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잠저(潛邸)에 있을 때 친구로 지냈다. 이성계가 왜장 아지(阿只拔都)를 칠 때 여위현의 집에서 점심을 같이 먹고 낮잠을 잤다는 기록이 『경산지(京山誌)』에 전한다. 고려 말 관작이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이르렀고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했으나 조선 건국 후에는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자녀와 조카의 교화에 전심했다. 잦은 병화로 말미암아 그가 태어난 연대와 죽은 날짜조차 고증할 길이 없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구미시 광평동 다송마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