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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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希聖 |
영어음역 | Mun Huiseong |
이칭/별칭 | 경수(敬修),지헌(止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명자 |
[정의]
조선 후기의 무신.
[가계]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경수(敬修), 호는 지헌(止軒). 아버지는 문관도(文貫道)이며, 동생은 문희현(文希賢)이다.
[활동사항]
문희성(文希聖)은 1594년(선조 27)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 공을 세웠다. 이후 서생포첨사와 고령첨사를 거쳐 수원부사에 임명되었으나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1614년(광해군 6) 역모를 꾀하였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였으나 1618년 비변사의 강력한 추천으로 정주목사에 임명되었다. 1619년 강홍립(姜弘立)의 휘하에서 분령편비방어사(分領編裨防禦使)로 요동(遼東)의 후금(後金)을 토벌하였으나 이듬해 심하(深河)에서 패배하여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났다.
1625년(인조 3) 광주목사를 역임하였으며, 정묘호란 때에는 삼전도를 지키는 데 공을 세웠다. 이후 전주영장, 경상우수사, 부산첨사, 경상좌수사, 남한산성별장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 안주방어사(安州防禦使)로 임명되었다가 평안병사 유림(柳琳)과의 관계로 조방장(助防將)이 되었다. 1640년 남한산성 축성의 공로가 인정되어 가의대부의 품계를 받았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면 인평리에 있으며, 비문은 홍여하(洪汝河)가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