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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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嶠 |
영어음역 | Gim Gyo |
이칭/별칭 | 국보(國寶),고경(高卿),오림군(烏林君),양양(良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용만 |
성격 | 무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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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
성별 | 남 |
생년 | 1430년 |
몰년 | 1479년 |
본관 | 일선 |
대표관직 | 세자사 |
[정의]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일선. 자는 국보(國寶)·고경(高卿). 아버지는 일선부원군(一善府院君) 김시로(金時露)이다.
[활동사항]
김교는 1444년(세종 26)에 진사가 되었으며, 학행으로 능참봉에 제수되었다가 영덕현령에 올랐다. 1452년(문종 2) 무과에 급제하여 평안절도사가 되었고, 1459년(세조 5) 동부승지를 거쳐 도승지에 올랐다. 1462년(세조 8) 강원도관찰사에 제수되었으며,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는데 참여하였다. 1468년(세조 14)에 형조판서 겸지경연의금부사에 올랐으며, 1471년(성종 2)에 평안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1474년(성종 5)에 병조판서에 제수되었으며, 1479년(성종 10)에는 세자시에 올랐다. 1479년 4월 명나라의 요청으로 건주의 야인을 토벌할 때, 도원수 윤필상(尹弼商)과 함께 부원수로 출전해 공을 세우고 명나라 황제으로부터 은대(銀帶)를 받았다. 성품이 온량하고 음악을 좋아하였으며, 아우 6명이 모두 무과에 합격한 무인 집안으로 당시 사람들이 부러워했다.
[상훈과 추모]
1467년(세조 13) 적개일등공신에 녹훈되었으며, 오림군(烏林君)에 봉해졌다. 또한 성종이 즉위했을 때 홍화좌리공신(弘化佐理功臣)에 녹선되고, 선산군(善山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양양(良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