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09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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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道煥頌德碑 |
영어의미역 | Monumental Stone of Bak Dohwan |
이칭/별칭 | 행용양위부사과박공도환송덕비(行龍驤衛副司果朴公道煥頌德碑)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지산동 560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재관 |
성격 | 금석각류|송덕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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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일반형 비석 |
건립시기/일시 | 1912년 |
관련인물 | 박도환(朴道煥) |
재질 | 화강암 |
높이 | 159㎝ |
너비 | 45㎝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구미시 지산동 560 |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지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을 지낸 박도환의 송덕비(頌德碑).
[개설]
구미시 지산동에 소재하는 계선각(繼善閣)은 중추원의관 박도환, 혜민원참서관(惠民院參書官) 박효달(朴孝達), 유학(幼學) 박조용(朴詔鏞) 등 3대에 걸쳐 자선을 베푼 밀양박씨 문중 세 인물의 송덕비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비각이다. 계선각이 세워진 후 신평동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학생박동보구황비(學生朴東輔救荒碑)’의 주인공인 박동보는 박도환의 부친으로서, 이들 4대는 모두 자선을 행하여 지역 주민들의 칭송을 들었다.
[건립경위]
박도환은 1902년(고종 39)에 중추원의관에 임명된 인물로서, 1876년(고종 13), 1883년(고종 20)에 두 차례에 걸친 큰 흉년이 들자 사재를 털어 적선하여 빈민을 구제하여 주었다. 특히 그가 백성들을 구제한 사실은 『고종실록(高宗實錄)』의 기사에도 있을 정도이며, 지역 주민들이 이를 기려서 비석을 세웠다.
[형태]
높이 120㎝, 너비 45㎝, 두께 15㎝의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팔작지붕의 덮개돌을 얹은 형태다. 덮개돌은 높이 33㎝, 너비 64㎝, 두께 46㎝이다. 비좌는 높이 6㎝, 너비 86㎝, 두께 54㎝로 되어 있다.
[금석문]
비의 앞면에는 ‘행용양위부사과박공도환송덕비(行龍驤衛副司果朴公道煥頌德碑)’라 새겨져 있고, 오른쪽 면에 ‘임자춘삼월상한(壬子春三月上澣)’이라 기록되어 있어 이 비가 1912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황]
비석은 계선각 내 위치하고 있으며, 상태는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4대에 걸친 자선을 통하여 사회의 구제와 발전에 기여한 인물을 기리는 유적으로서 가진 자가 사회적 책임을 다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모범으로 기억될 만한 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