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00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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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仁同立石 |
영어의미역 | Indong Menhir |
이칭/별칭 | 괘혜암,출포암(出浦岩)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민간 신앙 유적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 627-4 |
시대 | 선사/선사 |
집필자 | 이경자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7년 5월 13일 - 인동입석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84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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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인동입석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성격 | 입석 |
건립시기/연도 | 선사시대 |
관련인물 | 이등림 |
면적 | 322㎡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 627-4 |
소유자 | 국유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세워져 있는 2기의 입석.
[개설]
입석은 바위를 길게 다듬어 세워 두는 것으로 선돌이라고 하는데, 고인돌과 같은 큰돌 문화의 일종이다. 선사시대에는 고인돌 주변에 세워 묘의 영역을 나타내었으며, 역사시대에 와서는 마을 입구에 세워 귀신을 막거나 경계를 표시하도록 하였고, 토착신앙과 합쳐져 장수를 비는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인동입석은 원래 3기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까지 전하는 것은 괘혜암과 출포암 2기로 인동지역에 관아가 설치될 무렵 고을의 풍수지리에 이롭게 하고, 도둑을 잡기 위해 세워 둔 것이다. 괘혜암은 일명 신걸이바위 라고도 불리며, 출포암(出捕岩)은 일명 ‘도둑을 잡은 바위’라고도 불린다.
[위치]
인동입석은 원래 구미시 진평동 378-1번지에 위치하였다. 1986년도 구미시에서 인의동인의동 364-5번지로 이건(移建)하였다가, 다시 진평동사무소 맞은편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형태]
앞에서 보아 오른쪽 큰 돌은 앞면에 ‘출포암’이라 새기고, 뒷면에는 ‘인동수구석(仁同水口石)’, 다른 한 면에는 그 사연을 기록하였다. 괘혜암은 짚신을 걸어 두었던 바위라는 뜻으로, 짚신 한짝도 관아의 것이므로 소홀히 하지 않았던 인동현감 이등림(李鄧林)의 청백함을 기리기 위해 조선 선조 때 고을 사람들이 이 명칭을 새겨두었다. 출포암 뒷면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대정기념비(大正紀念碑)’라 새긴 것을 광복 후 ‘대한민국건국기념(大韓民國建國記念)’이라 고쳐 새긴 것이다.
[현황]
1987년 5월 13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8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