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
-
경상북도 구미시 구포동에 있는 조선 말 흥선대원군이 세운 척화비. 조선 말 흥선대원군이 1866년(고종 3)의 병인양요와 1871년(고종 8)의 신미양요를 겪은 이후 내부적으로 쇄국의 의지를 다지고 외세의 침입을 경계하면서 온 나라에 경고하기 위하여 서울 종로와 전국의 주요 도로변에 건립하였다. 구미 척화비의 경우 칠곡 사람들이 서울로 드나드는 길목인 지금의 위치에 건립하였다. 구...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성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금석은 고려 태조 왕건의 왕비인 해량원부인(海良院夫人)이 태어난 곳이다. 예전에는 김싯골 또는 짐수골로 불렀다고 한다. 낙성리는 낙성1리와 낙성2리로 나누어져 있는데 금석은 낙성1리에 속해 있다. 금석은 미석산(彌石山, 168m)의 남동쪽에 펼쳐진 들의 구릉지 경사면에 위치해 있다. 미석산의 봉우리에서는 낙동강의 하도와 백사장 그리...
-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에 있는 조선 말 흥선대원군이 금오산성을 수축한 후 세운 송덕비. 조선 말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1866년(고종 3)의 병인양요 후 유비무환의 자세로 국방을 튼튼히 하기 위하여 전국의 여러 산성을 수축할 때, 금오산성도 함께 수축되었다. 송공비에 따르면 이때 내성을 수축했는데 누각 규모가 100여 칸에 이르렀고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관아와 군창을 새로...
-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조선시대 이후 선현제향(先賢祭享)과 교육을 위해 설립된 기관. 우리나라에서 서원의 시작은 1543년(중종 38)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고려 말 학자 안향(安珦)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하여 경상도 순흥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건립하면서부터이다. 서원의 건립은 본래 향촌 유림들에 의하여 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국가가 관여할 필요가 없었으나,...
-
경상북도 구미시 신동에 있는 조선 말 구미 지역의 학자 장현도의 재사. 1890년에 증이조참판(贈吏曹參判) 장현도(張顯道)를 모신 재사이다. 6칸 규모의 건물인데, 양양재의 현판은 흥선대원군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1924년에 중수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에 속하는 법정리. 팔공산 끝자락 뒷산의 계곡이 월(月) 자와 비슷하여 월동·월골이라 하였고, 월동과 임호(林湖)의 이름을 따서 월림이라 하였다. 2009년 1월 현재 총 153가구에 373명[남 177명, 여 196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팔공산 지맥 끝자락 산 밑에 형성된 마을로 낙동강과 접하여 자연 경관이 아름답다. 월림1리와 월림2리 두 개 행정리로...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던 시기 구미 지역의 역사. 구미시의 ‘구미’ 명칭은 조선시대 선산도호부 상구미면(上龜尾面)·하구미면(下龜尾面)에서 비롯되어 1914년 상하구면·하구미면이 개칭된 상고면·하고면이 구미면으로 통합, 개칭된 데 기인한다. 독립된 행정구역으로서의 구미시는 1978년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이 통합되어 시로 승격하면서 성립하였고, 1995...
-
개항기의 문신. 음사(蔭仕)로 관직에 올라 1873년(고종 10) 대사간이 되었으며, 이듬해에 대사간에 재임명되었다가 곧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이 해에 흥선대원군을 등에 업고 대일 외교를 담당하던 부산훈도(釜山訓導) 안동준(安東晙)이 백성의 재물을 빼앗아 치부했다고 계를 올려 처형당하도록 하였다. 1875년에는 지방의 부호와 사족들에 죄를 씌워 재물을 빼앗고 수많은 세납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