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 지역에서 일어난 전투.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의 군위현조에 이보의 약전에 의하면 “임진왜란 이후 인동현감으로 재임하면서 당시 인동은 왜구의 중요 통로가 되어 왜구의 피해가 특별히 심하여 전야(田野)가 비었고 사는 사람이 없는지라 관찰사가 논계하여 읍을 혁신하고 공으로써 임시 현감을 차임하고 또 과곡관을 겸임하니 추절을 당하여 득곡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