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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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후반 공주 지역농민의 항일 저항 운동 단체. 공주노농협성회와 지부의 설립은 소작인과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단체를 조직하고 저항하여 생존권 확보를 위해 투쟁하였던 민족운동이다. 1920년대 농민조합운동이 합법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소작상조, 노동공제, 무산교육, 애경상문’ 등의 목적으로 농민들을 중심으로 노동협성회가 조직되었다. 1925년 8월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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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속하는 행정면. 마한시대에는 불운국(不雲國), 백제시대에는 벌음지현(伐音支縣), 신라시대에는 청음현(淸音縣),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신풍현(新豊縣)으로 불렸다. 1750년대에 신풍현이 신상면(新上面)과 신하면(新下面)으로 분리될 때 신풍현의 아래쪽에 있다 하여 신하면이 되었다가 다시 신풍면이라 하였다. 1942년 신하면에서 신풍면으로 개칭되었고,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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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의 고려와 조선시대의 지방행정구역. 백제·신라시대에는 벌음지현(伐音支縣)이었으며, 고려 초에 신풍현이 되었다고 추측한다. 918년에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은 즉위한 뒤에도 삼한 통일을 위한 계속적인 정복사업을 펼쳤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지방제도가 변경 개편되기도 하였다. 후삼국을 통일한 후 940년(태조 23)에 효과적인 지방통제의 일환으로 군현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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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유구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유구역이 있던 지역은 호남과 서울을 연결해 주는 중심 통로로 조선시대 교통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었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행인들의 이동에 편의를 제공하고 나라의 중요 역원으로서 기능을 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역이 6곳이니 일신·광정·경천·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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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속하는 행정읍. 1750년대에 면리(面里)가 정착되면서 신풍현이 신상면(新上面)과 신하면(新下面)으로 분리되어 신풍현의 위쪽이라 하여 신상면으로 하였다. 1942년 면 이름을 유구역의 이름을 따서 신상면을 유구면(維鳩面)으로 개칭하였다. 백제시대에 벌음지현 또는 무부현(武夫縣)이었고, 고려시대에는 공주목 신풍현 관할이었으며 유구역이 설치되었다.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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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면에 있는 유구읍을 관할하는 행정 기관. 충청남도 공주시를 구성하는 6개 동[중학동, 웅진동, 금학동, 옥룡동, 신관동, 월송동], 1개 읍[유구읍], 9개 면[이인면, 탄천면, 계룡면, 반포면, 의당면, 정안면, 우성면, 사곡면, 신풍면] 중 유구읍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유구읍의 행정, 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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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탄천면을 관할하는 행정 기관. 충청남도 공주시를 구성하는 6개 동[중학동, 웅진동, 금학동, 옥룡동, 신관동, 월송동], 1개 읍[유구읍], 9개 면[이인면, 탄천면, 계룡면, 반포면, 의당면, 정안면, 우성면, 사곡면, 신풍면] 중 탄천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탄천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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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이래 현대까지의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지방 행정 체제. 현재의 공주시는 충청남도 2시 15군의 하나로, 1읍 10면 6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95년에 도농 복합 형태의 시가 설치되면서 종전의 공주시와 공주군이 통합되었다.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으며, 64년간 백제의 왕도에 해당하였고, 고려시대부터 계수관 고을로 지역 행정의 중심지였다. 또한 조선 후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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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리’라는 지명이 탄생하게 된 것은 1914년 일제강점기이다. 이때에 대대적인 행정개편 작업이 이루어졌고, ‘신하면’은 신상면의 일부를 병합하여 ‘신풍면’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신하면에 속해 있던 동막리, 화장리, 원동의 일부를 병합하면서 동막과 원동의 앞글자를 따서 ‘동원리’라 하게 된 것이다. 동원리의 지형은 유구천을 따라 동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모양이어서 원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