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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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에서 전승되고 있는 거북바위의 유래 이야기. 「거북바위 전설」은 우금고개를 이인 방면으로 넘어가노라면, 길옆 좌측에 화석이 된 두 거북이에게 깃든 이야기이다. ‘거북이 천년초를 얻기 위해 우금고개 뒷산에 다녀갔다’는 말에는 공주가 천년 왕국을 누릴 수 있는 길지(吉地)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동해 용궁인 신라와 서해 용궁인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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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에 소장되어 있는 사적입안. 「마곡사 사적입안(麻谷寺事蹟立案)」은 1851년(철종 2) 임원횡이 정리한 마곡사의 연혁에 관한 문서로, 제일 자세하며 사적입안이 작성된 이후의 중수 현황은 마곡사에 전해 내려오는 몇몇 현판을 통해 간단하게 살필 수 있다. 「마곡사 사적입안」에는 마곡사의 연혁을 비롯한 마곡사 전반에 걸친 여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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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남산2리에 있는 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2년 공주문화원에서 『공주의 맥』을 출판하기 위해 이길구가 현지 주민을 만나 채록한 것이다. 공주시 탄천면 남산2리에는 돌부처라 불리는 바위 2기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백제 때 계백장군이 이 바위를 숫돌로 삼아 장검을 갈았다고 한다. 그런데 신라에 백제가 패하게 되자 바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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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의 수원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2년 공주문화원에서 『공주의 맥』을 출판하기 위해 필자가 자료를 수집하여 정리한 것이다. 백제 때에 공주 월성산 아래에는 ‘수원사’라는 큰 절이 있었다. 어느 날 신라 진지왕 때 흥륜사(興輪寺)의 진자(眞慈)라는 승려가 수원사를 찾아오게 되었는데, 그는 평소에 부처님이 화랑으로 화신하여 세상을 제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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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가교리에서 춤다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춤다리 전설」은 『공주의 맥』(공주시·공주문화원, 1992)에 실려 있으나, 제보자나 채록과 관련된 사항은 알 수 없다. 공주시 사곡면 가교리 장다락골 서쪽에 위치한 마을을 ‘춤다리’라고 부른다. 무산 ‘춤달’ 아래에 있는 마을로, 마곡사와 산등성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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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에 간행된 공주 출신 문인 최종화의 작품집.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에 걸쳐 생존한 문인 최종화(崔鍾和)[1859~1918]는 공주목 연기현 동리에서 태어났다. 33세 때에 과거 공부를 뿌리치고 간재 전우(田愚)[1841~1922]의 문하에 들어가 경학에 전념하여 기호학파의 학맥을 잇는 신진학자로서 촉망을 받았다. 한말 국가의 정세가 위태할 때 공주목 정안현(현재 공주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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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년 아도화상이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계룡산에 창건한 사찰. 동학사, 신원사와 함께 계룡산의 대표적인 사찰의 하나로서 갑사구곡(甲寺九曲)의 경관을 배경으로 풍부한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갑사는 계룡산의 여러 사찰 중에서도 가장 문화재가 풍부한 사찰이며 공주시에 가까이 위치해 있다. 420년(백제 구이신왕 원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전언이 있다.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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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만들어진 건물이나 구조물.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 환경은 시골, 도시 할 것 없이 비슷한 속성을 지니며, 그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도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각 지역마다 갖는 자연적, 인문사회적 배경에 따라 마치 사투리와도 같은 삶의 모습이 그들의 독특한 생활 환경에 투영되고, 이것이 확대된 도시의 모습은 그들 나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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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과 반포면에 있는 산.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계룡산은 수려한 산세와 울창한 숲을 지닌데다 두통의 요지인 대전광역시에 가까이 있어 전국적으로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다. 신라 오악(五嶽) 가운데 서악(西嶽)으로 백제 때 이미 계룡 또는 계람산, 옹산, 중악 등의 이름으로 바다 건너 당나라까지 알려졌으며, 조선시대에는 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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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에는 역사 깊은 사찰과 절터가 수없이 많이 남아있다. 이는 백제의 고도에서 조선시대 충청도관찰사가 머무는 충청감영이 있던 ‘공주’의 지역적 위상 덕분이며 그것은 즉 많은 사람들이 공주에 살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계룡산에 사찰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통일신라시대부터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갑사가 백제 때에 창건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입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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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와 용산구곡에서 칠월칠석 밤에 도교의 신봉자들이 올리는 민간 의례. 봉우사상연구소에서는 봉우사상연구소 창립기념 제1회 학술연구 발표회를 개최하고 그를 바탕으로 2001년 4월에 『봉우사상(鳳宇思想)』창간호를 내기도 했다. 창간호에는 봉우(鳳宇) 권태훈(權泰勳)[1900~1994]의 생애와 사상을 비롯하여 정재서의 「봉우 권태훈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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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중동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통일신라 초기 비석(碑石) 모양의 석불상. 계유명삼존천불비상은 상하 두 개의 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연꽃 무늬 대좌(臺座)와 몸체가 한 몸이며, 그 위에 별석으로 된 각이 진 장방형의 지붕돌을 올려놓았다. 조각은 비석의 중앙에 높은 돋을새김으로 표현하였고, 양쪽에 각각 4줄의 「조상기(造像記)」를 새겼다. 중앙의 삼존불은 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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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신원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계룡산 산신에게 제사하던 제향 건축물. 1879년(고종 16) 중수한 건축한 건물이지만, 계룡산신에 대한 제사 공간으로서의 역사는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계룡산은 신라의 제사 규정에서 중사(中祀)에 속한다. 신라 5악 신앙에 의한 국가적 제사의 전통이 후대로 계승된 것이다. 15세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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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죽동 마곡사 포교당 내에 있는 조선 후기의 청동 범종. 오대산 상원사 소장 범종 이후 우리나라 범종의 전통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거의 완전한 형태의 조선시대 범종으로, 범종 정상부에는 단룡과 음통(音筒)이 한 조를 이루는 종뉴가 갖추어져 있으며, 몸체에는 상하 문양대와 네 개의 네모꼴 유곽이 구비되어 있다. 종뉴 가운데의 용은 마치 천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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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부터 조선시대까지 공주 지방을 맡아 다스린 정3품의 외직(外職) 관리. 고려시대의 지방 제도는 성종 때 이르러 대대적인 개혁이 이루어졌다. 983년(성종 2)인 983년에 최승로의 건의를 받아들여 전국의 12개 주에 주목이란 외관을 파견하였는데, 12개의 주목 중에서 공주도 포함되어 상주하는 외관이 파견됨으로써 충청 지역 행정 중심지로 부각되었다. 조선시대에도 고려시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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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소학동에 있는 통일신라 때의 효자 향덕의 정려비. 755년(경덕왕 14)에는 심각한 기근이 신라 전국을 휩쓸고 전염병까지 나돌았다. 부모 공양이 막연해지자 공주 판적향(공주시 소학동 일대)에 살던 향덕은 자기 넓적다리 살을 베어 부모를 봉양하였다. 또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종기를 입으로 빨아 치료하였다. 신라 경덕왕은 향덕의 효행이 보고되자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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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년(헌덕왕 14) 웅천주에서 김헌창이 일으킨 난. 김헌창(金憲昌)[?~822]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김주원(金周元)이다. 김주원은 선덕왕(宣德王) 6년에 김경신(金敬信)[원성왕]과의 왕위 계승 경쟁에서 패한 후 정계에서 물러났으나, 780년(혜공왕 16)에 일어났던 정변에서 큰 공을 세운 덕에 아들 김헌창은 정부에 참여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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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음력 정월 15일에 행하는 세시풍속. 대보름은 음력 정월 보름의 상원(上元)을 특별히 일컫는 말로, 대보름날이라고도 한다. 열나흘 날은 소보름이라고 한다. 매달마다 15일은 있지만, 정월 15일은 한 해의 첫 번째 보름이기 때문에 중히 여겨 명절로 삼는다. 사람들은 대보름날 모여 술과 음식을 마시고 농사를 점치며 액막이를 한다. 유득공(柳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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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백제 제24대 왕. 백제 제22대 왕이었던 문주왕의 동생인 곤지(昆支)의 아들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동성왕을 가리켜 ‘문주왕의 동생인 곤지(昆支)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곤지의 5명의 아들 중 둘째’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동성왕(東城王)[재위 479~501]은 모대(牟大)·말다(末多)·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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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4년 상원(上願) 화상이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창건한 사찰.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계룡산(鷄龍山)에 있는 절로 ‘동계사(東鷄寺)’라고도 한다. 동학승가대학은 운문사의 강원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구니 수련 도량으로 손꼽히고 있다. 724년(성덕왕 23) 상원(上願) 화상이 암자를 지었던 곳에 회의(懷義)가 절을 창건하여 청량사(淸凉寺)라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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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의 금제 귀걸이. 귀걸이는 삼국시대 장신구류 중에서 비교적 많이 발굴되었고 장식 기법이 우수하다. 귀걸이의 형태는 나라간의 인적, 물적 교류에 따라 모방하는 사례가 생기면서 새로운 형식으로 발전되어 왔다. 삼국시대 귀걸이는 귓불에 닿는 부위의 넓이에 따라 세환식과 태환식으로 나뉘는데, 백제의 귀걸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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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백제시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뒤꽂이. 고대 국가에서는 신분을 상징하기 위하여 머리에 관을 썼는데, 가장 높은 신분을 상징하는 관에는 새 장식이 많이 사용되었다. 이는 새를 하늘과 연결해 주는 신조로 여겼기 때문이다. 백제의 경우 관에 새가 장식된 예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무령왕의 머리 장식용 금제 뒤꽂이에 새가 장식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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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금으로 만든 무령왕비의 팔찌. 무령왕비의 금제 팔찌는 금봉(金棒)을 원형으로 휘어서 만들었으며, 크기를 조절할 수 있도록 양끝이 약간 벌어진 형태이다. 내면은 매끈하게 처리되었으며, 외면은 ‘V’자형의 홈을 파서 톱날 모양의 거치문(鋸齒文)으로 장식하였다. 금제 팔찌는 크기가 다른 2종류가 있다. 오른쪽 팔목에 끼웠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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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백제의 제22대 왕.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문주왕이 개로왕의 아들이라고 되어있지만 개로왕이 통치할 때 상좌평(上佐平)이 되어 통치를 도운 것을 보면 동생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실제로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문주왕을 개로왕의 동생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사실로 미루어 문주왕은 개로왕의 동생이면서 다 같이 제20대 비유왕(毗有王)의 아들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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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8년부터 660년까지 존속한 삼국시대 고대국가의 하나.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는 BC 18년에 건국하여 660년에 나당연합군에게 망하여 678년간 존속한 것으로 되어 있다. 백제는 이렇게 장구한 세월을 유지하는 동안 2번의 천도를 단행하였다. 따라서 흔히 백제의 역사는 도읍지를 기준으로 한성시대(BC 18~AD 475)·웅진시대(475~538)·사비시대(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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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 7월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정복당한 뒤 금강 유역을 비롯해 백제 전역에서 일어났던 백제부흥운동. 백제 의자왕(義慈王)이 642년 신라를 공격하여 대야성(大耶城)[현 경상남도 합천군] 등 40여 성을 함락시키는 등 관산성(管山城) 전투(戰鬪)에서 성왕(聖王)의 전사로 실추된 백제의 국위를 만회하기 위해 신라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자, 위협을 느낀 신라는 김춘추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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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석가모니(釋迦牟尼)를 교조로 삼고 석가모니가 설(說)한 교법(敎法)을 종지(宗旨)로 활동하는 종교. 불교라는 말은 석가모니인 부처가 설한 교법이라는 뜻과 부처가 되기 위한 교법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스도교·이슬람교와 더불어 세계 3대 종교의 하나인 불교는 석가 생전에 이미 교단(敎團)이 조직되어 포교가 시작되었으나 교세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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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8년(성왕 16) 백제 제26대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로 수도를 옮긴 사건. 고대 사회에서 도읍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이다. 천도는 곧 중심지의 이동이며, 지배 세력의 변화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렇기에 고구려 장수왕(長壽王)의 평양 천도 이후 국내성에 거주한 귀족들의 반발이나 신라 신문왕(神文王)의 달구벌(현 대구) 천도 실패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기존 지배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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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불상을 모셔 놓고 공적으로 불교 신행을 행하는 장소. 사찰은 절, 사원(寺院), 정사(精舍), 가람(伽藍)이라고도 한다. 불교가 발생한 인도에서 수행자들이 우기를 피해 한 곳에 모여 생활을 하는 공동 주거지의 성격을 띠었는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종교 의례를 행하는 성스러운 장소로 변모하였다. 충청남도 공주는 475년(문주왕 원년) 백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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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전승되어 오는 민담·전설·신화의 총칭. 공주 지역 설화를 살펴보면 신화는 거의 없고 전설과 민담이 전승되고 있는데, 이도 백제사 및 계룡산과 관련이 깊다. 또한 공주가 한양과 가까운 관계로 정치사와 관련된 설화가 적지 않은데, 예를 들면 이괄의 난으로 인한 인조의 공주 파천 등이 그것이다. 1992년에 구중회가 『공주민속』에서 설화를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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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백제 제26대 왕.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성왕은 무령왕의 아들이라고 되어 있다. 맏아들이라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성왕은 무령왕의 맏아들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513년 8월 무령왕의 아들 순타태자(淳陀太子)가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왕의 맏아들은 위덕왕인데, 554년에 29세였다고 『일본서기』에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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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단종의 영혼과 세조에게 항거한 충신 열사의 혼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사우. 공주에서 대전 방면으로 32번 도로를 따라가면 16㎞ 거리에 박정자 삼거리가 있다. 여기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약 4㎞를 가면 동학사가 있는데, 숙모전은 동학사의 동편에 위치하고 있다. 숙모전은 억울하게 죽은 단종과 사육신,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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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에서 숙모회의 주관으로 매년 봄·겨울에 개최되는 전통 초혼제향. 숙모전대제는 사단법인 숙모회에서 봄과 겨울에 지내는 전통제향으로서, 숙모전과 동계사 및 삼은각에서 차례로 거행한다. 숙모전은 조선의 단종 임금과 사육신 등 96인의 위패를 봉안하고, 삼은각은 고려 말의 충신 정포은 등 6인을, 동계사는 신라의 박제상, 고려의 유차달 등 2인의 위패가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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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1년(의자왕 11) 열반종 개산조 보덕(普德) 화상이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에 창건한 사찰. 갑사, 동학사와 함께 계룡산의 대표적인 사찰의 하나로서 풍부한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계룡산 동서남북 4대 사찰 중 남사(南寺)에 속한다. 계룡산 남쪽에 위치한 신원사는 651년(의자왕 11)에 열반종의 개종조 보덕화상이 창건한 이래 940년(태조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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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신풍면을 관할하는 행정 기관. 충청남도 공주시를 구성하는 6개 동[중학동, 웅진동, 금학동, 옥룡동, 신관동, 월송동], 1개 읍[유구읍], 9개 면[이인면, 탄천면, 계룡면, 반포면, 의당면, 정안면, 우성면, 사곡면, 신풍면] 중 신풍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신풍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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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년 백제 문주왕이 왕도를 한성(현 서울)에서 웅진(현 공주)으로 옮긴 사실. 백제 475년에 고구려 장수왕은 3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백제 왕도인 한성을 공략하였으며, 개로왕은 이를 막아내지 못하고 한성이 함락되었다. 그 과정에서 개로왕은 죽음을 당하였다. 이에 한성에서 즉위한 문주왕(文周王)은 고구려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국가체제를 정비하고자 그해 10월에 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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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 당나라가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설치한 통치 기구. 웅진 지역은 사비 천도 이전 63년간 백제의 수도로 기능하였다. 사비로 천도하기 이전까지 웅진이 수도로 결정된 이유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으며, 방어상 유리하다는 점도 그 중의 하나였다. 나당연합군의 침공으로 사비성이 함락될 당시 의자왕 역시 웅진성으로 피신한 사실은 이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백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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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공주 공산성의 백제시대 명칭. 475년(문주왕 1) 고구려의 침입으로 수도였던 한성이 함락되자, 백제 문주왕은 웅진으로 천도하였다. 이후 538년(성왕 16) 백제 성왕은 사비로 천도를 단행하였다. 따라서 웅진에 도읍한 시기는 63년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웅진으로 도읍한 이유로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한 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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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6년부터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설치한 신라의 지방행정조직. 공주 지역은 삼국시대 백제가 475년(문주왕 1) 북한성(北漢城)에서 천도하여, 538년(성왕 16) 다시 부여로 옮기기까지 백제의 도성이었다. 백제가 나당(羅唐)연합군에게 멸망하고 나서 당나라는 공주 지역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를 두었으며, 670년(문무왕 10)에는 신라가 관장하였다. 신문왕 때 웅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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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음력 8월 15일에 행해지는 세시풍속. 음력 8월은 가을이 한창이라는 뜻으로 중추(仲秋)라고 한다. 중추인 음력 8월의 15일 밤[秋夕]에, 사람들은 정 위치에 있는 달에 배례하면서 신에게 그해의 풍작을 감사드리기 때문에 추석이라고도 하고, 중추에 백물(百物)이 성숙하기 때문에 중추가절이라고도 한다. 이날 사람들은 수확한 농산물 등을 이웃에게 선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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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쌍신동에 있는 산. 취리산은 무령왕릉, 공주 공산성과 왕궁지와 같은 공주에 남아있는 백제의 문화와 역사를 보여주는 유적 중에 하나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이 산의 북쪽에 회맹제단이 설치되었음을 찾아볼 수 있다. 백제가 멸망한지 5년째인 665년에 당나라는 백제 멸망 시 포로로 잡아갔던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을 웅진도독으로 임명하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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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에 있는 백제 웅진도독 부여융과 신라 문무왕의 회맹을 위해 취리산 정상부에 쌓은 제단의 터. 당 고종은 웅진도독부 체제로 운영되는 백제가 영토를 유지하며 신라와 평화롭게 지내도록 하기 위해 665년 8월 유인원의 주재로 부여융과 신라 문무왕이 화친의 맹약을 맺도록 했다. 그리하여 웅진, 즉 지금의 공주에 있는 취리산 정상에 제단을 쌓고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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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5년 8월 취리산에서 웅진도독 부여융과 신라 문무왕 사이에 맺은 화친의 맹약.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점령당한 뒤 의자왕과 함께 당나라로 끌려간 부여융(扶餘隆)은 백제 태자로서 자신의 위상을 되찾고 백제를 재건하기 위해 당나라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백제 지역에 친당정권(親唐政權)을 심어놓으려던 당나라는 664년 10월 유인궤(劉仁軌)의 추천이 있은 이후에 부여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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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있는 여러 층으로 또는 높고 뾰족하게 세운 건축물. 탑은 높이가 나비나 길이에 비하여 두드러지게 높은 건조물을 말한다. 주로 감시나 방어 등의 군사적 목적, 천상(天上)세계에 대한 희구를 나타내는 종교적 목적, 권력이나 위엄의 상징, 기념·전망·관측·통신, 종탑이나 시계탑 등을 목적으로 축조되었으며 나무·돌·벽돌·콘크리트·철강 등 다양한 재료가 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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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이래 현대까지의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지방 행정 체제. 현재의 공주시는 충청남도 2시 15군의 하나로, 1읍 10면 6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95년에 도농 복합 형태의 시가 설치되면서 종전의 공주시와 공주군이 통합되었다.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으며, 64년간 백제의 왕도에 해당하였고, 고려시대부터 계수관 고을로 지역 행정의 중심지였다. 또한 조선 후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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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년에서 936년까지 존속했던 견훤(甄萱)이 세운 나라. 9세기 말 이후 신라 사회는 심한 분열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리면서 경주 정부의 통제력은 상실되었다. 호남 지역에서 견훤은 전주를 도읍으로 정하고 백제의 부흥을 공언하며, 900년에 후백제를 건국하였다. 이어 철원의 궁예는 후고구려를 세웠다. 견훤과 궁예가 대결하는 후삼국시대, 공주는 양대 세력이 마주하는 접점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