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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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지역에 있는 산이나 언덕을 넘어 다니도록 길이 나 있는 비탈진 곳. 고창군은 산이 낮고 들녘이 많은 지역으로, 고개의 경우 대부분 500m 미만의 작은 고개로 이루어져 있다. 시인 미당(未堂) 서정주(徐貞柱)의 고향으로 시집 『질마재의 신화』의 무대인 질마재, 고창 사람 박의(朴義)가 수원 광교산 전투에 참여하여 적장 양고리(陽古利)를 사살한 것을 기념하여 이름을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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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와 아산면 상갑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대표적인 돌무덤군. 고창 죽림리 지석묘군은 죽림리 일대에 442기이다. 세계문화유산은 고창 죽림리 지석묘군에 고창읍 도산리의 5기를 포함하여 총 447기이다. 고창 죽림리 지석묘군이 분포된 입지는 다음과 같다. 고창읍에서 서쪽 방향으로 약 3㎞ 떨어진 곳에 북방식 고인돌[지석묘]이 있는 도산마을이 있다. 다시 이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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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서남부에 위치한 군. 전라북도 고창군은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이며, 고인돌·판소리·농악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또한 고창갯벌은 2020년 8월 현재 세계자연유산 등재 여부를 심사 중에 있다. 고창갯벌이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면 고창군은 유형·무형·자연 등의 모든 세계유산을 가진 한국 유일의 생태·문화·관광 도시가 된다. 또한 고창군은 고인돌과 같은 거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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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운곡리에서 부안면 용산리로 넘어가는 고개. 주변에 굴이 있어서 ‘굴치’라고 부르고 있다. 이 고개 아래 또 고개가 있어서 이 고개를 큰굴치라 하고 아래 있는 고개를 소굴치라고 부르고 있다. 부안면과 아산면을 잇는 지방도 734호선의 도로가 지나고, 소굴치는 화시봉의 북쪽 산자락에 있다. 또한 고창군에서 조성한 오베이골 생태 탐방로가 있는 오베이골은 다섯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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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고창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구역. 소(所)는 고려 시대 있었던 말단 행정구역의 하나로 향(鄕)·부곡(部曲)·장(莊)·처(處)와 함께 부곡제(部曲制)를 구성한다. 주로 왕실과 관아에서 필요로 하는 광물이나 수공품의 생산을 맡아 하던 곳이다. 생산물의 종류에 따라 금소(金所), 은소(銀所), 동소(銅所), 철소(鐵所), 사소(絲所), 주소(紬所), 지소(紙所), 와소(瓦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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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반룡리 일대에 설치되었던 숙박 시설. 원(院)이 언제부터 설치·운영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 시대부터 우역(郵驛)을 설치하고 사신의 왕래처에 관(館)을 두었던 점으로 미루어 삼국 시대부터 설치되었다고 여겨진다. 원은 공공의 임무를 띤 여행자뿐만 아니라 때때로 일반 행인에게 제공되기도 하였다. 역과 함께 설치된 시설이어서 흔히 역원제도라고 일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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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에 있는 부처를 숭상하고 불법을 익히는 장소. 사찰은 절, 사원(寺院), 정사(精舍), 가람(伽藍)이라고도 한다. 불교가 발생한 인도에서 수행자들이 우기를 피해 한 곳에 모여 생활을 하는 공동 주거지의 성격을 띠었는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종교 의례를 행하는 성스러운 장소로 변모하였다. 전라북도 고창군의 주요 사찰과 사찰 터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선운사(禪雲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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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지역에 분포하는 주변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지형. 고창군이 속해 있는 전라북도의 높이별 면적 분포는 100m 이하의 평지가 51%, 100~500m의 소기복지(小起伏地)가 33%, 500~1,000m의 중기복지(中起伏地)가 13%, 1,000m 이상의 대기복지(大起伏地)가 나머지 3%를 나타내고 있다. 이렇듯 전라북도는 높이 500m 이하의 면적이 84%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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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와 아산면 하갑리, 상갑리와 경계를 이루는 성틀봉에 있는 백제 시대 석성. 서산산성에 대한 문헌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나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조선 후기에 서산고성에 대한 기록이 나타난다.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고창 고적조에 “서산고성은 현의 서쪽 15리에 있는데, 곧 회시산의 남쪽 자락이다. 산허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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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궁을 시조로 하고 김순덕을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선산김씨(善山金氏) 시조 순충공(順忠公) 김선궁(金宣弓)은 김알지(金閼智)의 30세손, 문성왕(文聖王)의 8세손이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백제를 정벌하면서 선산 일선군(一善郡)에 이르러 모병할 때 김선궁이 종군하기를 원하자 왕건이 환영하고 친히 어궁(御弓)을 내리고 이름을 선궁이라 지어 주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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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용산리와 선운리에 걸쳐 있는 산. 소요산은 소요대사가 창건한 소요사에서 따온 이름이다. 소요사는 풍수지리상 제비가 보금자리에 깃든 형상의 연소혈(燕巢穴)로, 소요산 목울대 부근[소요산 동쪽 암벽 아래]에 있다. 소요산의 별칭은 높이가 같은 경수산[경수봉]과 형제처럼 나란히 솟아서 형제봉으로 불리며, 두 개의 산중에서 하나가 흥하면 하나는 쇠퇴한다는 속설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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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운곡리 화시산[화시봉] 서쪽에 있는 동굴. 왕자굴은 원래 호랑이가 살아서 호랑이굴로 불렸다. 그런데 신라 왕자가 난을 피해 십승지(十勝地)를 찾아 백제 땅 고창 선운산 건너편의 화시봉에서 호랑이를 몰아내고 머물렀다는 전설이 있다. 왕자굴이 있는 화시봉에는 왕자가 가마를 타고 오르다가 투구를 벗어 놓은 투구봉[일명 시루봉], 병졸들이 가마가 무거워서 내려놓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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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계리는 용이 계곡에 살며 등천하였다 하여 용계(龍溪)라 하였다. 1600년대 진주강씨가 터를 잡고 살았고, 그 뒤 부평김씨와 연안이씨가 같은 시기에 들어왔다고 한다. 조선 말기에는 고창군 산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인천(仁川)·원평(院坪)·신촌(新村)·오암(五岩)·용수(龍水)·용평(龍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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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운곡리 명칭 유래와 관련해서 두가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마을 주변이 기봉(旗峰)·용봉(龍峰)·필봉(筆峰) 등으로 둘러싸여 아침저녁으로 안개가 덮고 있다 하여 운곡(雲谷)이라고 하였다는 이야기와 화시산[화시봉] 아래 골짜기이므로 운곡이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1780년경 선산김씨(善山金氏)가 터를 잡아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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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운곡리 일대에 있는 습지. 습지는 생태자원 중에서도 보전 가치가 매우 높은 서식처이다. 육상생태계와 수생태계의 전이 공간을 창출하는 중요한 자연 자원이다. 특히 오베이골 일대 습지 주변은 자연 생태가 훼손되지 않은 내륙의 대표적 습지로, 넓은 면적과 빼어난 자연 경관, 오염되지 않은 청정 지역으로 다양한 식생이 분포하고 있다. 오베이골 일대 습지 가운데 운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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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고창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구역. 소(所)는 고려 시대 있었던 말단 행정구역의 하나로 향(鄕)·부곡(部曲)·장(莊)·처(處)와 함께 부곡제(部曲制)를 구성한다. 주로 왕실과 관아에서 필요로 하는 광물이나 수공품의 생산을 맡아 하던 곳이다. 생산물의 종류에 따라 금소(金所), 은소(銀所), 동소(銅所), 철소(鐵所), 사소(絲所), 주소(紬所), 지소(紙所), 와소(瓦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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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의 지형 특성과 지각 구성 암상, 지층 및 지질 구조. 고창군은 한반도 남서부에 해당되며, 전라북도의 서남단에서 서해안을 끼고 있는 지역이다. 동북으로는 전라북도 정읍군과 부안군에, 동남으로는 전라남도 장성군과 영광군과 접하며, 경위도상으로는 동경 126°26‘에서 126°46’, 북위 35°18‘에서 35°34’에 달한다. 고창군의 지형 형태는 동서간이나 남북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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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에서 아산면 운곡리로 넘어가는 고개. 행정마을 뒷산 고개에 있으므로 행정치라고 하며, 행정재라고도 부르고 있다. 행정치 남쪽의 고창읍 죽림리는 대나무가 많아서 대숲마을로 불리며, 소나무도 울창하다. 행정치는 옛날 은행나무 옆에 정자와 주막집이 있어 먼 길을 떠나 나그네들이 쉬어 갔던 곳이다. 행정치 북쪽은 운곡저수지와 화시봉이 있고, 남쪽에는 세계문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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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운곡리·용계리와 부안면 사창리에 걸쳐 있는 산. 화시봉의 산세가 남서쪽을 향하여 활[矢] 모양으로 뻗어 내린 형국이며, 산봉우리가 불꽃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화시봉을 화시산으로 부르기도 하고 화실봉으로도 부르는데, 이는 화살 ‘시(矢)’를 잃을 ‘실(失)’로 잘못 해석했거나 귀신들의 불장난으로 마을을 잃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정상에서 불로 된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