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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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신천(信川). 자는 구부(懼夫), 호는 장봉(莊峰). 전라남도 영광에 정착한 강유(康旒)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강응성(康應星)이다. 강흔(康訢)은 4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16세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이후 성장하여 상례와 여묘(廬墓)를 다시 갖추는 효행을 지켜 냈다. 학덕이 높은 수은(睡隱) 강항(姜沆)과 사귀면서 널리 배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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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건동리에 관한 뚜렷한 지명 유래는 확인되지 않는다. 1914년 ‘건동(建洞)’과 ‘송산(松山)’을 병합하여 그 중심 마을의 이름을 붙여 건동이라고 했다. 1700년대 중엽 무송유씨(茂松庾氏) 유제한(庾濟漢)이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와공면(瓦孔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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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있는 학원농장 일원에서 매년 4월 중순~5월 중순에 열리는 청보리밭축제. 고창 청보리밭축제가 열리는 학원농장은 전 국무총리 진의종과 부인 이학 여사가 1960년대 초반 고창군의 야산 약 33만 579㎡를 개간하여 조성하였다. 1960년대는 뽕나무를 식재하여 잠업을 하였고, 1970년대에는 목초를 재배하여 한우 비육 사업을 하였으며, 1980년대에는 보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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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에 있는 공음면 관할 행정 기관. 공음면사무소는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과 관련된 지방 행정의 기초 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와공면(瓦孔面)과 동음치면(冬音峙面)을 합쳐 12개 법정리로 된 공음면(孔音面)이 신설되었다. 면사무소가 설치된 시기는 뚜렷한 기록은 없으나 그 무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관할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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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의 마을 수호와 풍농을 기원하며 음력 1월 말일과 2월 1일에 지내는 동제. 구암리 마래마을 당산제는 매년 음력 이월 초하루날에 거행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마래마을은 공음면에 속하고, 마을이 전라남도 영광군과 경계하고 있으나, 일제 강점기 때 신작로가 개설되면서 마래마을의 행정구역은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과 전라남도 영광군 홍농읍으로 나뉘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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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구암리는 마을에 거북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구암(龜岩)’이라 하였다. 1600년대에 경주최씨(慶州崔氏)가 말을 타고 지나다, 주점에서 하룻 밤을 묵는데 꿈에 선몽을 받고서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동음치면(冬音峙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덕음리(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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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군유리는 군사가 주둔해서 ‘군유(軍留)’ 또는 ‘군율’이라 하였다 한다. 속설에는 유림(儒林)과 선비들이 많이 사는 마을이라 군유(群儒)라고 한다고 한다. 풍수상 학(鶴) 형국이라 군학(群鶴)을 비유하여 ‘군유(群濡)’로 부른다는 유래도 있다. 1400년대 초 달성배씨(達城裵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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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덕암리는 대리미산 밑이라 ‘대리미’ 또는 ‘덕암(德岩)’이라 하였다고 한다. 1700년대 초 김해김씨(金海金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와공면(瓦孔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평촌리(平村里)·복흥리(福興里)·창평리(昌平里)·지음리(知音里)·응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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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두암리는 풍수지리상 마을 모습이 곡물을 측정하는 ‘말[斗]’과 같다하여 ‘두암(斗岩)’이라 부른다고 한다. 1600년대 말 광산김씨(光山金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동음치면(冬音峙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송운리(松雲里)·신흥리(新興里)가 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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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군.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185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서 태어났다. 문덕중이 동학에 입교(入敎)한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무장의 손화중(孫華仲) 포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송문수(宋文洙), 고순택(高舜澤)과 함께 동학 농민 혁명에 참여하여 1894년 3월 20일 무장 기포와 백산 봉기에 관여하였다. 9월의 2차 동학 농민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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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석교리는 석교리 창촌마을에 작은 돌다리가 있어 ‘독다리’·‘석교(石橋)’라 한데서 유래되었다. 1400년대 초 창원황씨(昌原黃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동음치면(冬音峙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동촌리(洞村里)·남동리(南洞里)·다옥리(多玉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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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선동리는 풍수지리상 마을의 형태가 부채 모양과 같다고 해서 ‘부채울’ 또는 ‘선동(扇洞)’이라 하였다. 1950년대는 마을 앞에 큰 샘이 있어 ‘대정(大井)’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1490년대에 안동김씨(安東金氏)가 터를 닦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와공면(瓦孔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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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대리는 새로 된 마을이라 ‘새터’·‘신대리(新垈里)’라 하였다고 한다. 1750년대에 천안전씨(天安全氏)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동음치면(冬音峙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새터·축동(丑洞)·구정리(九井里), 이동면(二東面)의 복흥리(福興里)가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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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전리에 관한 뚜렷한 명칭유래는 확인되지 않는다. ‘예지’로 불렸다가 ‘예전(禮田)’으로 불렸다고 한다. 1300년대 초 남양홍씨(南陽洪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와공면(瓦孔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시묘리(侍墓里)·응암리(鷹岩里)가 병합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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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수리는 풍수지리상 마을 지형이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용수리라는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한편, 마을 전체 형상이 용(龍)의 꼬리 형국이라고 한다. 용은 물[水]이 있어야 잘 산다는 관념에 따라 청천마을 앞 저수지를 만들었는데, 그 후부터 용수마을이 잘살게 되었다는 유래도 있다. 1650년대 말에 안동김씨(安東金氏)가 터를 잡고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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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장곡리는 긴 골짜기 안에 마을이 있어 ‘장곡(長谷·壯谷)’이라고 했다고 한다. 1800년대 초 남양홍씨(南陽洪氏)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동음치면(冬音峙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회룡리(回龍里)·내대리(內垈里)·양동리(良洞里)와 전라남도 영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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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신유박해 순교자. 본관은 전주(全州). 세례명은 마티아, 여겸(汝謙)은 자라고 한다. 무장현 동음치면[현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거주하고 있던 전주최씨 현감공파의 후손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현재 상세한 계보는 확인되지 않는다. 최여겸(崔汝謙)은 25세 때인 1788년(정조 12) ‘전라도의 사도’라고 불리는 유항검을 찾아가 천주교 교리를 배운 뒤, 충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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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칠암리는 마을 뒷산에 일곱 개의 큰 바위가 있어 ‘칠암’이라 한다고 한다. 본래는 망모기 밑이라 ‘망목촌’이라 불렸다고 한다. 망모기는 원칠암에서 무장면으로 가는 고개이다. 1300년대에 마을이 형성됐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동음치면(冬音峙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갑촌리(甲村里)·용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