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곡리
-
초기 국가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의 전라북도 고창 지역의 역사. 고대라는 개념은 서양의 고대·중세·근대의 세 시기로 나눈 시대 구분을 원용한 것이다. 서양사에서 고대 사회의 특징은 주로 생산 관계를 중심으로 한 경제적 관점에서 보는 노예주와 노예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사에서 서양사의 경우와 같은 노예 경제 체제를 인정할 수 없다는 점은 한국사에서 고대 설정을 어렵...
-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전개된 역사 이전의 시대. 선사 시대는 문자가 존재하지 않은 시기의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로 구분된다. 이는 덴마크의 톰센(C. J. Thomsen)이 제안한 3시대 체계[Three age system]에 따라 인류가 생산한 유물을 석기 시대·청동기 시대·철기 시대의 3대 시기로 구분한 것에 기초한 것이다. 한편, 문자가 존재하...
-
전라북도 고창군에 있는 행정구역. 아산면은 대아(大雅)의 ‘아’자와 산내(山內)의 ‘산’자를 따서 아산(雅山)이라 하였다. 마한 시대에 모이부곡현, 백제 시대에 모양부리현, 통일 신라 시대에 모양현·고창현, 조선 시대에 고창현이었다. 조선 말기에는 고창군 대아면 지역으로 회진(會津)·쌍천(雙川)·추동(秋洞)·선동(仙洞)·동촌(東村)·사동(寺洞)·양정(良丁)·대야(大也)·서당(書堂)...
-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북도 고창군의 역사. 고창이라는 지명은 『삼국사기(三國史記)』권36, 잡지 제5 무량군편에서 “백제의 모량부리현(毛良夫里縣)을 신라 경덕왕 때 고창현(高敞縣)으로 고쳐 불렀다.”는 기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현재의 고창군은 신라 때에 고창현으로 무령군이 관할하였고, 고려 시대에는 고부군에 속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고창현이 되었고, 조선 후기에...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운곡리 명칭 유래와 관련해서 두가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마을 주변이 기봉(旗峰)·용봉(龍峰)·필봉(筆峰) 등으로 둘러싸여 아침저녁으로 안개가 덮고 있다 하여 운곡(雲谷)이라고 하였다는 이야기와 화시산[화시봉] 아래 골짜기이므로 운곡이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1780년경 선산김씨(善山金氏)가 터를 잡아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운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운곡서원은 지방 유림들이 중국의 회암(晦庵) 주희(朱熹)[1130~1200], 백암(白巖) 김제(金濟)[1362~?], 농암(籠巖) 김주(金澍)[1365~?], 강호(江湖) 김숙자(金叔滋)[1389~1456],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학문과 덕행, 그리고 충의를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시...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운곡리 일대에 있는 습지. 습지는 생태자원 중에서도 보전 가치가 매우 높은 서식처이다. 육상생태계와 수생태계의 전이 공간을 창출하는 중요한 자연 자원이다. 특히 오베이골 일대 습지 주변은 자연 생태가 훼손되지 않은 내륙의 대표적 습지로, 넓은 면적과 빼어난 자연 경관, 오염되지 않은 청정 지역으로 다양한 식생이 분포하고 있다. 오베이골 일대 습지 가운데 운곡...
-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청동기로 도구를 만들어 쓰던 시대. 우리나라에서 청동기 시대는 벼농사의 시작과 더불어 청동기가 유입되고 전쟁이 시작되는 3,000년 전부터 2,000년 전의 시기이다. 청동기 시대에는 벼농사가 시작되었으며, 청동의 주조술이 전래되어 무기나 장신구 등이 제작되었다. 또한 나무의 벌채로 인하여 대규모로 자연의 변화가 개변이 시작되었으며,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