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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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포만은 곰소만[黔沼灣] 또는 웅연만(熊淵灣)이라고도 한다. 전라북도 고창군 서북단과 부안군의 변산반도 사이의 서해안에 위치한다. 서쪽이 바다로 열려 있으며 위도(蝟島)가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 북쪽, 동쪽, 남쪽은 육지로 둘러싸여 있다. 북쪽 연안은 부안군 변산반도로 변산면·진서면·보안면이 있고, 동쪽 연안은 부안군 줄포면과 고창군의 흥덕면이 있으며, 남쪽 연안은 고창군 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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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고 고창군에 있는 주요 도로와 교통수단 및 관련 시설 교통은 사람이나 물건을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시키는 모든 활동이나 과정, 절차를 말하며 인류 문명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유사 이래로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인간의 경제 활동이나 사회 활동은 거의 전적으로 교통이라는 수단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교통수단의 발달은 지역의 산업 발전은 물론, 주거 생활의 향상과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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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 부녀자들은 지금도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집 안에 머물고 있는 신에게 맑은 물 한 잔을 정성스럽게 올리고 비손을 한다. 집 안을 지키는 신은 성주, 조왕, 삼신, 철륭 등이다. 이 가운데 성주는 집을 지키는 신으로 집 안에서 가장 큰 신이다. 그래서 성주는 안방 윗목에 좌정해 있다. 진마마을에서는 지금도 설과 추석에 꼭 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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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서부 해안에 있는 바다. 대한민국에서는 서해(西海), 중국에서는 황해(黃海)가 국제 표준으로 쓰인다. 서해는 우리나라의 서쪽에 위치한 바다이고, 황해는 중국 황하의 토사가 유입되어 바다 색깔이 대체로 황색으로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에서는 서해로 표기하는 것이 옳다. 고창군의 북부 지역인 부안면은 북서쪽과 동북쪽이 서해의 해안선에 접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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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선운리는 마을 앞에 포구가 있어서 선운포(仙雲浦)라고 명명한 것에서 기원하였다. 조선 말기 흥덕군 이서면과 부안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부안면의 구룡리(九龍里)·신흥리(新興里) 일부, 이서면 선운리를 병합하여 선운리라 하고 고창군 부안면에 편입하였다. 구룡동 동쪽에 귀영다래, 독내들 밑에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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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 앞에는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그곳은 원래부터 들판이 아니었다. 바다였던 곳을 간척하여 육지로 만들었다. 마을에는 포구도 있었다. 포구의 이름은 ‘선운포’였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가난해, 김성수 씨의 아버지인 동복영감의 전답을 소작하거나, 아니면 합자해 조그마한 배로 어업을 하거나, 밖에 사람들이 와 경영하는 소금막에서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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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면 선운리는 개항기까지 흥덕군 이서면에 속해 있었다. 마을 앞에 포구가 있어 ‘선운포’ 또는 ‘선운’이라 불렀다. 그러던 것을 1914년의 행정구역 통폐합 때 부안면 구룡리와 신흥리 일부를 병합하여 ‘선운리’라 하고 고창군 부안면에 편입시켰다. 선운리는 자연마을인 진마, 신흥, 서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서정주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진마마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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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작을 시조로 하고 최선준·최진계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 세거 성씨. 전주최씨는 완주백(完州伯) 문열공(文烈公) 최순작(崔純爵)을 시조로 한다. 고창군의 전주최씨는 월당공파(月堂公派), 첨추공파(僉樞公派)가 알려져 있다. 전주최씨 고창군 입향조 최선준(崔善峻)은 월당공 최담(崔曇)의 6대손으로 1507년(중종 2)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德川面) 만무에서 태어났다.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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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고창 지역의 배가 드나드는 개의 어귀. 포구(浦口)는 바닷물이나 강물이 드나드는 ‘개[浦]’ 중에서 배가 입·출항하는 곳을 말한다. 위치에 따라 바닷가에 있는 해상 포구와 강가에 있는 강상 포구로 나눌 수 있고, 기능에 따라 비교적 가까운 거리를 건너는 나루와 배가 입·출항하는 포구로 나누어진다. 조선 시대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는 서쪽 해안의 무장현과 흥덕현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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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자평(子平)이고, 호는 취은(醉隱)·해광(海狂). 평해군 황숙경(黃淑卿)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첨정 황처중(黃處中)이고, 할아버지는 의병장 황이후(黃以厚)이며, 아버지는 황종혁(黃宗爀)이다.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이 증손자이다. 황세기(黃世基)는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외조부가 글자를 가르쳤는데. 7세 때 시를 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