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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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향교에서 1967년 편찬한 무장현 지역의 유림 연원록. 『송사유림연원록(松沙儒林淵源錄)』은 우리나라 유학의 연원과 고창 지역 여러 문인들의 성명과 자·호·생년·본관·행적 등을 간단히 붙여서 편찬한 책이다. 송사(松沙)는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개명된 무송(茂松縣)과 장사(長沙縣) 두 지명을 가리킨다. 조선 시대인 1417년(태종 17) 두 현을 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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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성내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석축 읍성 및 관아 건물. 1991년 2월 26일 사적 346호로 지정된 무장읍성은 1417년(태종 17) 무송현(茂松縣)과 장사현(長沙縣)을 합쳐 그 중간 지점에 무장현을 두고 축조한 건물이다. 남문과 동문 등 2개의 성문이 있었으며, 그중 남문인 진무루(鎭茂樓)는 복원되어 있다. 성내에는 취백당(翠白堂)의 동헌과 송사지관(松沙之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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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성내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무장현[현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의 객사. 객사는 궐패(闕牌)를 두고 현의 수령이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배례하는 정청(正廳)으로서, 왕명(王命)으로 지방에 내려오는 벼슬아치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고창 무장객사는 좌·우헌(左·右軒)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창 무장객사의 정문격인 진무루 누각 아래로 진입하면 평지를 두고 만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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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무송리는 옛 무송현(茂松縣)의 터라서 ‘무송(茂松)’이라고 하였다 한다. 형성 시기는 뚜렷하지 않으나, 조선 중기 광산김씨(光山金氏), 진주강씨(晋州姜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원송면(元松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용두리(龍頭里)·금사리(金沙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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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금필을 시조로 하고 유녹숭을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 세거 성씨. 무송유씨(茂松庾氏)는 고려 시대 정1품인 태사(太師) 충절공 유금필(庾黔弼)을 시조로 한다. 유금필은 고려 때 태조를 도와 삼한 통일에 공을 세워 삼중대광통합삼한익찬공신에 봉해지고 태사에 오른 인물이다. 4세 유장신은 평산유씨(平山庾氏)의 중시조가 되었고, 5세 유녹숭(庾祿崇)은 무송유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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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성내리에 있는 조선 시대 비석군. 무장읍성은 1417년(태종 17) 병마사 김저래가 여러 고을의 백성과 승려 등 주민 2만여 명을 동원, 흙과 돌을 섞어 축조하였다. 1991년 2월 21일 사적 제346호로 지정되었으며, 성의 남문인 진무루가 옛 정취를 자아내고, 성내에는 객사, 동헌 등 옛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건물 주변에는 여러 가지 유구들이 산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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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지역에 설치된 조선 전기의 행정구역. 조선 시대에 현(縣)은 지방 행정구역인 주부군현(州府郡縣) 가운데 가장 낮은 단위의 행정구역이다. 현은 지방 행정구역상 독자적으로 존재하면서도 군과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는데 군현제도가 그것이다. 군과 현은 군이 현을 거느리는 행정적 상급 단위라기보다는 병렬적 관계였다. 군현제도는 지방을 통치하기 위한 행정 체계이고, 이는 중앙 집권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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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적의 습격에 대비하여 흙이나 돌로 구축한 방어 시설. 성곽이란 성(城)과 곽(郭)의 합성어이다. 성은 내성을 말하고 곽은 성의 주위를 에워싼 나성의 형태로 우리나라는 내성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공간을 성곽으로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전적 의미로 성곽은 군사적·행정적인 집단이 공동 목적을 갖고 거주 주체의 일정한 공동 활동 공간을 확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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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같은 성과 같은 본관을 가지고 살아 온 성씨. 『택리지(擇里志)』를 쓴 이중환(李重煥)은 한국 성씨의 보급 시기를 고려 전기로 잡고 있다. 후삼국이 쇠퇴하면서 일찍부터 지방에 내려가 정착하기 시작한 중앙 귀족의 후예와 재래의 토착 촌주층(村主層)이 중심이 된 호족(豪族)들은 실질적으로 군현(郡縣)을 장악하고 스스로 관반(官班)을 형성하여 지역을 통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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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북도 고창군의 역사. 고창이라는 지명은 『삼국사기(三國史記)』권36, 잡지 제5 무량군편에서 “백제의 모량부리현(毛良夫里縣)을 신라 경덕왕 때 고창현(高敞縣)으로 고쳐 불렀다.”는 기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현재의 고창군은 신라 때에 고창현으로 무령군이 관할하였고, 고려 시대에는 고부군에 속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고창현이 되었고, 조선 후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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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무송유씨 시조.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구수(龜壽). 고려 태사(太師) 유금필(庾黔弼)의 5세손이다. 유녹숭(庾祿崇)은 문종 때 학행으로 천거되어 벼슬길에 올랐다. 1099년(숙종 4)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가 되었다가 1102년(숙종 7) 좌산기상시로 자리를 옮겼다. 그 해 가을 지서북면병마사(知西北面兵馬使)를 거쳐 추밀원부사 겸 태자빈객를 역임한 뒤 무송부원군(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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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고창 출신의 문신이자 양리(良吏). 본관은 무송(茂松). 증조할아버지는 의종(毅宗) 때 재상을 지낸 공숙공(恭肅公) 유필(庾弼)이며, 할아버지는 명종(明宗) 때 공부시랑(工部侍郞)을 지낸 유응규(庾應圭)이다. 아버지는 강종(康宗) 때 병마부사를 지낸 유세겸(庾世謙)이다. 유석(庾碩)은 1216년(고종 3) 과거에 장원 급제 후, 내시(內侍)에 임명되어 여러 벼슬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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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고창 출신의 문신. 유순도(庾順道)는 조선 전기 태조부터 세종 대에 활동한 문신이다. 생몰년 미상이며, 유학에 종사하는 자이나 오로지 음양(陰陽)·술수(術數)와 의술(醫術)로 진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종이 세자의 배필을 점치도록 명하는 등 음양, 풍수 분야에서 왕의 신임을 받았고, 역법의 교정에도 참여하였다. 본관은 무송(茂松). 고려의 태사(太師) 유금필(庾黔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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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고창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빈옥(賓玉), 초명은 유원규(庾元規). 아버지는 의종(毅宗) 묘정에 배향된 공숙공(恭肅公) 유필(庾弼)로, 유응규(庾應圭)는 5남 중 맏아들이다. 유필은 문장과 덕행이 출중했으며 성품이 진실하고 정직하여 아첨하지 않았다. 의종 때에 벼슬이 판이부사(判吏部事)까지 올랐다. 왕의 수차례에 걸친 설득에도 불구하고 왕의 사랑하는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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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고창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담연(湛然). 할아버지는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 유필(庾弼)이며, 아버지는 공부시랑 유응규(庾應圭)이다. 아우는 금자광록대부 회부시랑을 지낸 유세겸(庾世謙)이다. 큰아들은 이규보와 친교가 두터운 유경현(庾敬玄)이며, 그 아래로 유정규와 유정현을 두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유응규와 유자량이 형제로 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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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전라북도 고창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무송(茂松). 할아버지는 검교태자첨사(檢校太子詹事)를 지낸 유고성(庾告成)이고, 아버지는 검교태자태사(檢校太子太師)를 지낸 유언경(庾彦卿)이다. 큰아들은 유응규(庾應圭)이고, 좌복야(左僕射)를 지낸 유자량(庾資諒)이 손자이다. 고려 고종 초 장원급제 하고 지방의 안찰사와 동남도도지휘부사(東南道都指揮副使)를 역임한 유석(庾碩)이 증손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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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 고창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헌숙(憲叔), 호는 동정(桐亭). 고조할아버지는 무송현 호장의 아들로 자수성가하여 충렬왕 때 정헌대부 국학대사성 문한사학(正獻大夫 國學大司成 文翰司學)을 지낸 윤해(尹諧)이며, 할아버지는 문정공(文貞公) 윤택(尹澤)으로 공민왕 때 밀직제학(密直提學)을 지냈다. 아버지는 『고려사(高麗史)』 효우전에 입전된 윤구생(尹龜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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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고창 출신의 문신. 윤자운(尹子雲)의 집안은 고려 시대부터 이름 있는 가문이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 사신(史臣)은, 그를 성품이 편협하고 아무런 재능이 없으면서도 의정부의 고관이 되어 별다른 정책을 건의한 것도 없으며, 이시애(李施愛)의 난 때에는 협박을 받고 적이 조정을 속이려는 문서에 서명하고 적을 대할 때마다 대인(大人)이라 칭하였다고 혹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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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고창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중덕(仲德), 호는 율정(栗亭). 증조할아버지는 무송현 호장 윤양비(尹良庇)이고, 할아버지는 충렬왕 때 정헌대부(正獻大夫) 국학대사성 문한사학(國學大司成 文翰司學)을 지낸 청백리 윤해(尹諧)이다. 아버지 윤수평(尹守平)은 일찍 세상을 떠났으며, 어머니는 진례군부인(進禮郡夫人) 김씨이다. 아들은 고려 말 이미 『주자가례(朱子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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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에서 조선 초 고창 출신의 문신. 윤회(尹淮)는 조선 초의 대표적인 문한관(文翰官)으로서 국가의 여러 편찬 사업에 참여하고 많은 글을 지었으며, 경연에서 여러 차례 경사(經史)를 강론하였다.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청경(淸卿), 호는 청향당(淸香堂). 증조할아버지는 고려 말 첨의찬성사를 지낸 문정공(文貞公) 율정(栗亭) 윤택(尹澤)이며, 할아버지는 『고려사(高麗史)』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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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고창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地理志)」 무령군조에 "본시 백제의 상로현(上老縣)으로, 경덕왕이 장사(長沙)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하고 있다[長沙縣 本百濟上老縣 景德王改名 今因之]."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무장현 건치 연역조에는 "본래 백제의 상로현(上老縣)이었는데, 신라가 장사라고 고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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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촌락. 집성촌은 성(姓)과 본(本)이 같은 부계의 혈족들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을 의미한다. 마을을 주도하는 성씨가 상대적으로 결속하면서 토성과 세거성씨가 중심이 된 동족 마을이 발달하게 되었다. 1.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수록된 성씨 『세종실록지리지』에 실린 고창 지역의 세거성씨를 보면 고창현의 토성은 오(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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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산수리·무송리 일대에 설치되었던 숙박 시설. 원(院)이 언제부터 설치·운영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 시대부터 우역(郵驛)을 설치하고 사신의 왕래처에 관(館)을 두었던 점으로 미루어 삼국 시대부터 설치되었다고 여겨진다. 원은 공공의 임무를 띤 여행자뿐만 아니라 때때로 일반 행인에게 제공되기도 하였다. 역과 함께 설치된 시설이어서 흔히 역원제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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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한문으로 된 한시, 학문, 한학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 고창에서의 한문학은 고려 초에 본이 흥덕인 장연우(張延祐)에서 부터 기록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당시 중앙에 고창 인맥층이 두터워지면서 오세재(吳世才) 등 한문학의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러다가 조선에 오면서 중앙 정계에 진출이 약해졌으나 유학이 진보를 거듭하여 김경희(金景熹), 김질(金質), 오희길(吳希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