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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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1851년 3월 1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도림리 150번지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강종팔(姜鍾八) 혹은 강종서(姜宗瑞)이다. 강종회는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경복궁위장(景福宮衛將)을 역임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1906년 4월 최익현(崔益鉉)이 전라북도 정읍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기병(起兵)하자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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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계문(季文), 호는 송천(松川)이다. 1875년 11월 24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고시필(高時必)이다. 고예진은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뒤 형제들인 고용진(高龍鎭), 고석진(高石鎭)이 최익현(崔益鉉)과 거사할 것을 계획하자 가담하였다. 19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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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호는 송재(松齋), 이명(異名)은 고운서(高雲瑞)이다. 1850년 10월 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서 고시필(高時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고용진은 1878년 아우 고석진(高石鎭), 고예진(高禮鎭)과 함께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 들어갔다. 1906년 4월 전라북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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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석교리 새마을공원에 세워진 기념비. 파리 장서 사건 혹은 유림 독립 선언이라 불리는 제1차 유림단 사건은 1919년 김창숙을 중심으로 한 유림의 인사들이 파리평화회의에 독립 탄원서[‘이하 파리 장서’]를 보내려고 했다가 발각된 사건이다. 3·1운동 유림의 인사들은 유림이 독립 선언에 참여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이를 대신하여 장문의 한국 독립 청원서인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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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학천리 추산봉에 있는 각석. 망오대는 전라북도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전구(崔銓九)가 1918년 ‘지은최공전구망오대(智隱崔公銓九望梧臺)’라는 글자를 새기고 매년 지역의 선비들과 모여 추모 의식을 거행하였던 암벽이다. 최전구는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생이었다. 1906년 최익현이 태인의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 적극 참여하여 스승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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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동사(道東祠) 는 가평리 가평마을을 대표하는 문화 유적이다. 도동사 외삼문 안에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방호정사가 위치하며, 그 뒤에 다시 외삼문이 있고, 그 뒤편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을 한 사당[도동사]이 배치되어 있다. 도동사는 1920년대 초반 고순진(高舜鎭)ㆍ고예진(高禮鎭) 형제를 비롯한 많은 문인들과 전국의 유림들이 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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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신용수는 1888년 10월 28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사천리 60번지[외사길 26]에서 태어났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906년 최익현(崔益鉉)이 전라북도 정읍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 아버지를 따라 의진(義陣)에 들어갔다. 1908년 2월 박도경(朴道京) 의병장이 남포(藍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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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북도 고창군의 역사. 고창이라는 지명은 『삼국사기(三國史記)』권36, 잡지 제5 무량군편에서 “백제의 모량부리현(毛良夫里縣)을 신라 경덕왕 때 고창현(高敞縣)으로 고쳐 불렀다.”는 기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현재의 고창군은 신라 때에 고창현으로 무령군이 관할하였고, 고려 시대에는 고부군에 속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고창현이 되었고, 조선 후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