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과 경상남도 삼천포를 잇기 위해 개설이 계획되었던 철도 노선. 김삼철도(金三鐵道)는 김천을 기점으로 하여 거창(居昌), 안의(安義), 함양(咸陽), 단성(丹城), 진주(晋州) 등 임업 지역을 종관하여 경상남도 삼천포를 연결하기 위해 개설이 계획되었던 철도 노선이며 그 궤도가 거창가도와 같았다. 김삼철도 개설 계획은 일제 강점기인 192...
-
조선 전기 김천 지역에 우거한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계온(季昷)·효관(孝盥), 호는 점필재(佔畢齋). 아버지는 성균사예(成均司藝)를 지낸 김숙자(金叔滋)이며, 어머니는 밀양 박씨(密陽朴氏)로 사재감정(司宰監正) 박홍신(朴弘信)의 딸이다. 김종직의 가문은 고려 말 선산의 토성이족(土姓吏族)에서 사족(士族)으로 성장하였으며, 아버지 대에 이르러 박홍신 가문과 혼인하면서 경...
-
경상북도 김천시 황금동에 전해 내려오는 놋쇠로 만드는 타악기 제작 기술. 김천징장은 황금동의 대표적인 무형 문화재로서 놋쇠를 이용하여 만드는 타악기 공예이다. 김천시 약물내기[황금동, 약수동]는 6·25전쟁 이전까지 경기도 안성과 함께 유기 생산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놋쇠 식기를 비롯한 대야·요강·징·꽹과리 등에 이르기까지 국내에서 생산되는 놋쇠 기구의 대부분을 이곳에...
-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인위적으로 형성된 연극·음악·무용·공예 기술 등 무형의 문화적 소산 중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큰 문화재. 무형문화재(無形文化財)는 김천시에서 일정한 형태가 없는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으로 가치가 큰 문화재를 일컫는다. 국가 무형문화재로는 금릉빗내농악이 2019년 9월 2일 국가 무형문화재 제11-7호로 지정되었으며, 경상북도에서는...
-
김천 지역을 흔히 사통팔달의 교통 도시라고 한다. 김천 지역이 교통의 요지로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삼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한 시대 김천 지역에 자리 잡은 감문국은 개령면 일대를 중심으로 성주 일대의 가야, 상주의 사벌국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하지만 경주 지역을 근거로 하여 주변 소국을 차례로 정복하며 성장한 신라의 전신인 사로국에 의해 서기 231년...
-
임진왜란 때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 돌고개[석현]에서 벌어진 김천의 대표적 전투. 이 석현전투로 인해 고개는 돌모리로 불리게 되었으며 면 이름도 석현면으로 불리게 되었다. 석현[돌고개]은 조선 시대에는 김산군, 지례현의 접경을 이루었다. 조선 시대에는 지례현 하북면에 속한 상좌원리는 1914년 석현면에 편입되어 상좌원과 도동, 원앞을 통합하여 하원리가 되었다. 구미의 석현면 면청사...
-
임진왜란 당시 우두령[우치현]에서 일어난 김천의 대표적 전투. 임진왜란 초기 전라도 점령의 임무를 맡은 왜군 제6진 고바야가와가 이끄는 왜군 1만 5000명이 의령에서 거병한 의병장 곽재우(郭再祐)의 활약으로 의령·삼가·합천에서 차단되고, 고령에서 거병한 김면(金沔)에게 함양·거창에서 차단되어 호남에 들어가지 못한 채 지례·김산·선산·성주 등지에 분산 주둔하면서 거창과 무주를 거쳐...
-
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주남수(朱南守)는 1892년 9월 2일 경상남도 거창에서 한학자 주회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3월 20일 거창 지역에서는 거창읍교회를 설립한 주남고[일명 주남선, 주남수의 형] 등 거창읍교회 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주남고는 당시 같은 교회 교인이던 오...
-
경상북도 김천시 율곡동에 있는 정부 투자 기관. 한국도로공사는 1969년 도로의 신설, 확장 및 유지, 관리 등을 통해 도로 교통의 발달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공기업으로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에 위치해 있었으나 2014년 김천 혁신도시로 이전하였다. 1966년 대한민국 정부의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추진에 따른 고속도로 건설계획 수립으로,...
-
오인유(吳仁裕)를 시조로 하고 오태원(吳泰元)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해주오씨의 시조는 고려 중기 군기감(軍器監)을 역임한 오인유이다. 시조로부터 8세(世)까지는 고려 시대로 8세 오광정(吳光廷)이 공조전서를 지내 전서공파(典書公派)를 형성했다. 또한 8세 오사렴(吳士廉)이 사복시경(司僕寺卿)을 지내어 사복시각공파(司僕寺脚公派)를 이루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