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028 |
---|---|
한자 | 政治 |
영어공식명칭 | Politics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정기 |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주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개설]
경상남도 거창군에서는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부족한 자원의 획득과 배분을 둘러싸고 대립과 분쟁, 그리고 타협이 발생하여 왔다. 분쟁과 대립을 조정하여 타협에 이르고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으로서 정치라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며, 정치는 국가, 정부 또는 자치 단체라는 제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경상남도 거창군의 정치를 광복 이후에 실시된 미군정, 각종 선거와 주요 정당 활동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광복 이후의 거창 정치]
1. 거창 인민 위원회와 미군정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미국에 항복하여 해방을 맞이 하였다. 해방 이후 여운형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던 건국 준비 위원회와 이어서 인민 위원회가 결성되었는데, 경상남도 거창군에서는 신학업이 위원장으로 선출되어 거창 인민 위원회를 이끌었다. 1945년 9월 16일 미 40사단의 해리스 준장과 시찰단이 부산광역시에 도착하면서 경상남도 지역의 군정 실시가 준비되었다. 미군정은 도내 각 경찰서장을 일제 경찰로 있었던 한국인을 임명하였는데, 장자관이 거창 경찰서장으로 임명되었으며, 거창 군수로는 신중목이 지명되었다.
2. 5·10 단독 정부 수립 반대 투쟁과 5·8사건
1948년 3월 1일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이 1948년 5월 10일 단독 선거 실시를 발표하자, 이를 반대하는 남조선 노동당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저지 투쟁이 일어났다. 1948년 5월 8일 경상남도 거창군에서도 남한만의 단독 선거 반대 세력이 전단을 살포하고 지서 및 면사무소를 습격하였고, 대동 청년단을 비롯한 우익 청년 단체들이 폭력으로 보복하였다. 5·10 총선에서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의 간부인 표현태가 제헌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3. 1948년 이후의 빨치산 활동과 거창 사건
전라남도 여수시와 순천시 지역의 반란을 주도한 14연대 병력이 1949년 3월 경상남도 거창군의 위천 지서와 북상 지서를 피습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후 한국 전쟁 중이던 1951년 2월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에서 공산 빨치산을 토벌하던 국군에 의하여 무고한 양민이 719명 대량 학살된 참극이 발생하였다. 1951년 3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경상남도 거창군 출신 신중목[무소속] 의원이 최초로 보고함으로써 진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오랜 노력 끝에, 1995년 12월 18일 국회 본회의에서 「거창 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 조치법」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대통령 선거]
1952년 8월 5일 유권자 직선에 의해 치러진 제2대 대통령 및 제3대 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 후보가 제2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부통령은 무소속 함태영 후보가 당선되었다. 경상남도 거창군의 투표율은 85.2%였고, 이승만 후보가 유효 투표수의 56.3%를 획득하였다.
제3대 대통령과 제4대 부통령 선거에서 경상남도 거창군은 95.3%의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자유당의 이승만 후보가 경상남도 거창군 유효 투표수의 59.7%를 획득하였고, 부통령에는 민주당 장면 후보가 22,245표 획득하였으며 자유당의 이기붕 후보가 19,558표를 획득하였다.
제4대 대통령과 제5대 부통령 선거에서 경상남도 거창군은 99.0%의 높은 투표율을 보였는데, 자유당 이승만 후보는 경상남도 거창군 유효 투표수의 85.8%인 41,875표를 획득하였고, 자유당 이기붕 후보는 40,702표를 각각 획득하였다. 그러나 4·19 혁명 이후 제5대 국회에서 간접 선거로 다시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어 윤보선 후보가 제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경상남도 거창군은 90.7%의 투표율을 보였다. 대통령에 당선된 박정희 후보가 경상남도 거창군 유효 투표수의 7.2%에 해당되는 3,613표를 획득하는데 그쳤는데, 전국 평균 지지율 46.6%보다 39.4%나 낮은 지지율을 보였다.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 공화당의 박정희 후보가 경상남도 거창군의 유효 투표수 51,199 가운데 29,577표를 획득하였고,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경상남도 거창군의 유효 투표수 47,025 가운데 32,077표를 획득하였다. 두 선거 모두 민주 공화당의 박정희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제8대부터 제12대 대통령 선거는 통일 주체 국민 회의와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하여 선출되었다.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경상남도 거창군은 투표율 90.2%를 보였다. 통일 민주당 김영삼 후보가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23,994표를 획득하였고, 민주 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22,269표를 획득하였다. 이 선거에서 민주 정의당의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 자유당 김영삼 후보가 경상남도 거창군 유효 투표의 74.57%인 32,788표를 획득하였으며, 김영삼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25,141표를 획득하였고, 새정치 국민 회의 김대중 후보가 3,978표를 획득하였다. 제15대 대통령으로는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경상남도 거창군 유표 투표수의 과반수를 넘는 27,147표를 획득하였지만, 제16대 대통령으로는 새천년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17대 대통령으로는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었고, 경상남도 거창군에서는 유효 투표수의 58.62%인 19,863표를 얻었다. 제18대 대통령으로는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었고, 경상남도 거창군에서는 유효 투표수의 72.55%인 28,726표를 얻었다.
[국회의원 선거]
제18대와 제19대 국회의원으로는 한나라당 신성범 후보가 경상남도 거창군·함양군·산청군이 병합한 선거구에서 연속 당선되었다. 제20대 국회의원으로는 경상남도 거창군·함양군·산청군·합천군이 병합한 선거구에서 새누리당 강석진 후보가 당선되었다.
[지방 자치 단체 선거]
1. 경상남도 도지사 선거
민선 경상남도 도지사 선거는 1960년 12월 29일 처음 실시되었으며, 신민당 후보 이기주가 10대 경상남도 도지사로 당선되었다. 이후 28대 경상남도 도지사까지 관선으로 이어오다가, 민선으로 제29대 민주 자유당 김혁규 후보가, 그리고 제30대와 제31대에도 한나라당 김혁규 후보가 연속하여 당선되었다. 제31대와 제32대 경상남도 도지사로 김태호 한나라당 후보가 재선되었으며, 제33대 도지사로 무소속 김두관 후보가 당선되었다. 김두관 후보가 201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하여 도지사직을 사퇴하였고, 새누리당 홍준표 후보가 제35대와 제36대 경상남도 도지사로 선출되었다.
2. 군수 선거
1995년 6월 27일 제1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에서 무소속 정주환 후보가 15,877표를 획득하여, 민주 자유당 최준학 후보를 324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제2회 동시 지방 선거에서는 정주환 후복 단일 후보로 당선되었다. 제3회 동시 지방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김태호 후보가 당선되었으나, 경상남도 도지사 보궐 선거를 위하여 중도 사퇴하였고 한나라당 강석진 후보가 거창 군수 보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제4회 동시 지방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강석진 후보가 당선되었으나, 국회 의원 출마를 위하여 2007년 12월 중도 사퇴하였고 2008년 보궐 선거에서 무소속 양동인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5회와 제6회 동시 지방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이홍기 후보가 군수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홍기 거창 군수에 대한 대법원의 선거법 위반 확정 판결로 2016년 제20대 국회 의원 선거와 동시에 실시된 거창 군수 보궐 선거에서 양동인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었다.
3. 경상남도 의회 의원 선거
1991년 6월 20일 실시한 제4대 선거 제1선거구에서는 민주 자유당 신중광 후보가, 제2선거구에서는 민주 자유당 강종희 후보가, 제3선거구에서는 민주 자유당 김진수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다. 1995년 6월 27일 실시된 제1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에서 제1선거구에서는 민주 자유당 김칠환 후보가, 제2선거구에서는 민주 자유당의 정종기 후보가, 제3선거구에서는 민주 자유당의 김상원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다. 제2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에서 제1선거구와 제2선거구에서 한나라당 정종기 후보와 한나라당 김태호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으며, 제3회 제1선거구에서 한나라당 백신종 후보가 당서되었다. 제4회 동시 지방에서는 제1선거구와 제2선거구에서 한나라당 백신종 후보와 한나라당 김재휴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으며, 제5회 동시 지방 선거에서는 제1선거구와 제2선거구에서 한나라당 백신종 후보와 한나라당 신주범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다. 그리고 2014년 제6회 동시 지방 선거에서는 제1선거구와 제2선거구에서 새누리당 안철우 후보와 새누리당 조선제 후보가 당선되었다.
4. 거창군 의회 의원 선거
초대 거창군 기초 의원 선거는 1991년 3월 26일 실시하였는데, 13명의 군 의원을 선출하였다. 1995년 6월 27일 실시한 제1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에서도 13명의 군 의원을 선출하였으며, 1997년 3월 27일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선거구에서 전재익 군 의원의 사퇴로 보궐 선거가 실시되었다. 제2회 동시 지방 선거에서는 군 의원 12명을 선출하였으나, 제3회 동시 지방 선거에서는 13명의 군 의원을 선출하였다. 제4회, 제5회, 그리고 제6회 동시 지방 선거에서는 군 의원 9명을 각각 선출하였으며, 비례 대표 군 의원 2명을 선출하였다.
2017년 현재 경상남도 거창군이 지역구인 경상남도 의회 도 의원 2명은 모두 새누리당 소속이다. 거창군 의회 군 의원 중 지역구 의원 9명은 새누리당 7명, 무소속 2명이며, 비례 대표 2명은 새누리당과 더불어 민주당이 각각 1명이다.
[거창군의 정당과 정치 성향]
2014년 제6회 동시 지방 선거에서는 새누리당과 새정치 민주 연합 양당이 존재하였지만, 2017년 현재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그리고 국민의 당이 활동하고 있다. 최근까지 경상남도 거창군의 다수 유권자가 영남 지역에 뿌리를 둔 새누리당 성향의 지역주의 정치 성향을 보여 왔으나, 2016년 국회 의원 선거와 동시에 실시된 거창 군수 재선거에서 무소속 후보가 당선된 점에 비추어 볼 때 지역주의 정치 성향이 약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