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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방아도 찧고 금방아도 찧고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D020101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1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기범

예전 이진말에는 물레방앗간이 있었는데, 마을 앞 지역의 4차선으로 확포장한 37번 국도와 37번 국도 구도로 사이에 위치하였다. 오늘날 이진말에는 응천이라는 하천이 있고 문화마을 옆으로 개울이 흐르지만 옛날에는 물이 흔하였다고 한다. 물레방앗간과 물이 흔했던 것에 대하여 이진말마을의 오덕욱 할아버지(35년생, 73세)는 “옆 마을 중말에다가 옛날에 보를 막아가지고선 지금 저기 저 성일전기 앞으로다 도랑이 있었어요. 깃대배기라는 들은 다 그 물 가지고 농사를 졌었어, 옛날에는. 그때는 물이 굉장히 흔했어요. 그래서 물끄트맥이에 물레방아가 있었어. 저 이장네 집 있는데. 이장네 집 있는데 그 옆에가 물레방아 자리야”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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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레방앗간에서 사금방아를 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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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욱 할아버지

이진말 물방앗간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벼와 곡식을 찧고 빻기도 하였지만, 특별히 금방아도 쪘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오덕욱 할아버지는 “벼를 찧고 그래다가, 금방아도 쪟어요. 물이 그리 흔했어. 사금방아였지. 사금 그러니까 광석. 광석 갔다가 빻은 겨. 물레방아에다가 쇠가 올라 댕기면서 빻은 겨. 그렇게 물이 얼마나 흔했는지 몰라. 들어가면 물이 거기 여기까지 올라왔으니까. 그렇게 물이 흔했었어. 그 득결서 내려오는 물이 그렇게 흔했어요. 그 득결에서 오는 물로 방아를 돌린 거여. 방아도 하고 금방아도 하고 그랬었지”라고 방앗간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이진말 물레방앗간은 1950년대까지는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그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오덕욱 할아버지는 물레방앗간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그거 금방아할 때가 우리 학교 당길 때니까 오십년대 전. 육이오 전. 육이오 이후에는 거의가 끝났을 거야. 방앗간 거기가 없어졌어요. 다른 거 할 수가 없으니까 다 치워버린 거지. 그려 물레방아는 오래 했어요. 그전에는 왜정 때부터 한 거니까. 전쟁 직전까지 하다가”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사금방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였는데 “무극광산에서 광석 갖다가 여기 와서 빻은 거야. 그 예씨라는 분이 예두 범씨라는 분이 거기서 광산을 자기가 개발을 하면서 한몫을 차지해서 여기서 빻은겨. 거기서 다 소화를 못 시키니까 이리로 와서 한겨. 그래서 예씨라면 혹시라도 아실랑가 몰라. 예기해가 우리 학교 후밴데 그 사람이 지금 그 주병덕 씨 경찰관 했을 적에 그보다 선배여. 무극광산에서 금을 캐면서 무극서도 하면서 남은 걸 여기서 하고 한 거야. 처갓집이 여기였었걸랑. 그때는 물이 왜 그렇게 흔했는지 몰라” 하였다.

이진말 물레방앗간은 이진말에 물이 풍부하여 방앗간이 컸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일제 시대부터 금광으로 유명했던 무극금광에서 나오는 금광석의 처리를 일부분 담당했다는 것을 통하여 방앗간의 규모와 물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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