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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에 하나 갈라지고, 또 하나 갈라지고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C020101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황경수, 고유리

비산리는 1리부터 4리까지 네 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비산리에서 태어나 자란 이명희 할아버지(83세)의 말에 따르면, 처음에는 1리와 2리, 두 리였던 마을이 2리가 점차 발전하면서 3리, 4리로 나뉘어져 현재의 마을 모습을 이룬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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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촌과정

이명희 할아버지(83세)께 비산리의 분촌 과정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1구에서 네 개의 마을이 떨어진 거예요?”

“2구에서 3개 동네가 갈려 떨어져 나갔지.”

“첫 번에 하나 갈라지고 또 하나 갈라지고 그런 거지. 전체 호수로 말하면 거기가 세 개 부락이 130호 정도 되지. 근데 동네가 떨어져 있으니까 구역을 가르다 보니 세 개가 된 거지.”

할아버지는 원래 두 개였던 마을이 현재 모습을 갖추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현대적인 행정구역으로 나뉘기 전 비산리의 자연 마을의 이름과 모습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비산리비산1리는 비선거리와 방죽안, 비산2리오랫말, 비산3리는 돌뫼와 주막거리, 비산4리새말이라는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주변에는 둔지미, 가재골, 배앙터, 목너미와 같은 여러 마을들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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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오랫말은 비산2구고 비산3구는 돌미, 돌뫼로 부르고 예전에 돌미라고 하고, 한자명으로는 돈산이라고 했었지. 비산4구는 새마을이라고 부르고 마을이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그렇게 부른 거지. 이건 전설이지만 이 아래 가면 대장리 앞에 동그랗게 보이는 높은 산이 있어. 그 산을 둔지미라고 한다고. 둔지미라고 해서 예전 군대가 주둔한 자리다 이거여. 그래서 여기서 보이는 조기 들이 가재골이라고 하는데, 예전에 골터니 뭐니 하는데 거기가 이제 군사 요지였던 모양이야. 그 앞에 우리 어려서도 집이 몇 채 있고, 거기가 본 동네가 그 동네가 없어지고 새로 생긴 게 새마을이여. 거기가 그전에 배양터라고 있는데, 가재골 옆쪽이 배양터인데 거기 밭에서 예전 기왓장이 많이 나왔어. 예전에 기왓장을 깨서 가루로 놋그릇을 닦고 그럴 때, 거기 가서 기왓장을 주워서 쓰고 그랬다구. 그래서 거가 예전에 집터가 많이 있었다는 건 그래서 증명이 되는데 거기가 이름이 배양터야. 등 배자, 받들 양자 사람을 받아들이는 터다 이거야. 그 너머가 목너미라고 했다고. 그걸 우리가 해석할 때 군대 목보는 자리라서 목너머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 전설이 있다고.”

할아버지는 예전에 마을에서 본 풍경과 이름 풀이를 해 주시며, 지명에도 조상들의 뜻이 들어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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