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17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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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善慶妻星州李氏 |
영어음역 | Lady Yi from Seongju, Gim Seonkyeong's Wife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임곡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한동희 |
성격 | 열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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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북도 음성군 |
성별 | 여 |
생년 | 1545년 |
몰년 | 1592년 |
본관 | 성주 |
[정의]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열녀.
[가계]
본관은 성주(星州).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이휘(李揮)의 딸이고, 김선경(金善慶)의 처이다.
[활동사항]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군자감판관(軍資監判官)으로 있던 남편 김선경은 싸움터로 나가고 자녀들만 데리고 집에 있었다. 충주 전투에서 이긴 왜적이 음성 지방까지 들어오자, 부인은 생극면 차곡리에 있는 수리산(愁離山)으로 피난했다.
그러나 이 곳도 안심할 수 없어 딸을 데리고 지금의 차평리 통산(通山) 밑을 지나다가 왜적과 마주쳤다. 왜적들은 부인에게 덤벼들었다. 부인은 딸을 껴안고 짐승과 같이 덤비는 왜적에게 반항했으나 여자로서는 적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왜적들은 이씨를 끌어안고 손목을 잡고 젖을 만지는 등 희롱을 하였다. 이 때 뜻밖에 힘센 젊은 장사가 나타나 단숨에 왜적을 쳐부수어 왜적은 모두 달아났다. 이 젊은 장사는 당시 주부(主簿) 벼슬을 지내던 허건민이라는 사람이었다.
이씨 부인은 허주부에게 백배 사례하고 딸을 아내로 삼아주기를 청하고, 왜적의 손이 닿았던 젖과 손목을 칼로 잘라버리고 자결하였다. 부인이 자결한 자리에 오색이 영롱한 구름 같은 기운이 수일간 감돌았다고 전한다.
[상훈과 추모]
선조는 정렬(貞烈)의 정려(旌閭)를 내려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에 세웠다. 정려 현판에는 ‘절부증가선대부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관행봉직랑군자감판관 김선경처증정부인성주이씨지문(節婦贈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管行奉直郎軍資監判官金善慶妻贈貞夫人星主李氏之門)’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뒷면에는 ‘성상즉위삼년을축사월십이일이건후사십팔년임오오월오일중수우오십사년후을사사월이십구일이건우차평리통산전구기(聖上卽位三年乙丑四月十二日移建後四十八年壬午五月五日重修又五十四年後乙巳四月二十九日移建于車坪里通山前舊基)’라고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