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6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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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昌衍 |
영어공식명칭 | Jeong Changyeon |
이칭/별칭 | 경진(景眞),수죽(水竹)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우진 |
출생 시기/일시 | 1552년 - 정창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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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79년 - 정창연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83년 - 정창연 사가독서(賜暇讀書) |
활동 시기/일시 | 1588년 - 정창연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591년 - 정창연 부제학(副提學)에 이어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592년 - 정창연 임진왜란 중 세자좌빈객(世子左賓客)으로 광해군을 시종 |
활동 시기/일시 | 1593년 - 정창연 대사헌(大司憲), 예조판서(禮曹判書)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599년 - 정창연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05년 - 정창연 혜민서제조(惠民署提調)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08년 - 정창연 예조판서 겸 동지성균관사(同知成均館事)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08년 - 정창연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10년 - 정창연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14년 - 정창연 우의정(右議政)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16년 - 정창연 우의정 사직,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23년 - 정창연 좌의정(左議政)에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636년 - 정창연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655년 - 수죽정공신도비 건립 |
묘소|단소 | 동래 정씨 임당공파 묘역(東萊鄭氏林塘公派墓域) -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산32-2 |
사당|배향지 | 동래 정씨 임당공파 묘역(東萊鄭氏林塘公派墓域) -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산32-2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동래 |
대표 관직 | 좌의정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개설]
정창연(鄭昌衍)[1552~1636]은 좌의정 정유길(鄭惟吉)의 아들이자 광해군의 외척으로 광해군 재위시 벼슬이 우의정에 이르렀으나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위에 반대하였다. 이로 인해 인조반정 이후 다시 좌의정에 서용되었다. 사망 후 아버지에 이어서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인 관악산 기슭의 동래 정씨 선영에 안장되었다.
[가계]
정창연의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경진(景眞), 호는 수죽(水竹)이다. 증조부는 중종 대 재상 정광필(鄭光弼), 조부는 강화부사(江華府使) 정복겸(鄭福謙), 아버지는 좌의정 정유길(鄭惟吉), 어머니는 원계채(元繼蔡)의 딸이다. 아들은 인조 대 도승지(都承旨)에 오른 정광성(鄭廣成)이다. 광해군의 국구(國舅) 유자신(柳自新)의 처남이며, 광해군의 비(妃) 유씨(柳氏)의 외삼촌이다.
[활동 사항]
정창연은 1579년(선조 12)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섰다. 선조의 총애를 받아 1588년(선조 21)에는 종4품의 품계로 정3품의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부제학(副提學)과 이조참판(吏曹參判)을 거쳤다. 임진왜란 중에는 세자좌빈객(世子左賓客)으로 광해군을 시종하였는데 훗날 이 일로 공신(功臣)의 녹훈을 받게 될 때 광해군은 정창연이 자신을 위해 의복을 바쳤던 일을 거론하기도 하였다.
정창연은 광해군의 비 유씨의 외삼촌이고 임진왜란시 분조(分朝)에서 광해군을 수행했기에 외척을 우대한다는 비판에도 광해군에게 중용되었다. 그러나 광해군이 계모인 인목대비를 폐서인하려하자 이에 반대하며 정계에서 물러나 광해군의 진노를 샀다. 인조반정이 일어난 후 1623년(인조 1) 좌의정에 서용되었는데 실록에 따르면 “폐비의 가까운 인척으로 자못 자신을 단속하고 경계하여 폐모의 정청(庭請)과 수의할 때 모두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시론이 훌륭히 여겼던” 때문이었다. 말년에는 병으로 은거하다가 1636년(인조 14) 사망하였다.
[묘소]
현재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산32-2에 있는 동래 정씨 임당공파 묘역(東萊鄭氏林塘公派墓域)에 부인 청주 한씨(淸州韓氏)와 함께 안장되었다. 정창연의 증조부인 정광필과 조부인 정복겸은 모두 현재의 경기도 군포에 묘소가 있으나 정유길과 정창연에 이어 후손들이 동작구 지역인 관악산 기슭에 안장되면서 이곳에 동래 정씨의 새로운 묘역이 조성되었다.
[상훈과 추모]
1655년(효종 6) 수죽정공신도비(水竹鄭公神道碑)가 현재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동래 정씨 임당공파 묘역(東萊鄭氏林塘公派墓域)에 세워졌다. 화강암으로 제작된 사각형의 받침대 위에 머리돌과 몸돌을 하나의 대리석으로 만들어 얹었다. 비문은 정창연의 아들 정광성의 친구인 영중추부사 이경여(李敬輿)가 짓고, 본문의 글씨와 두전(頭篆)은 각각 우의정 심지원(沈之源)과 여이징(呂爾徵)이 썼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제 제62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