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5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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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䄙嬪 朴氏 |
영어공식명칭 | Myeong-bin Bak-ssi|Lady Bak, Consort Mye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우진 |
활동 시기/일시 | 1698년 11월 4일 - 명빈 박씨 숙원(淑媛)에 책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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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99년 - 명빈 박씨 연령군(延齡君) 훤(昍) 출산 |
활동 시기/일시 | 1699년 10월 23일 - 명빈 박씨 숙의(淑儀)에 책봉 |
활동 시기/일시 | 1701년 3월 23일 - 명빈 박씨 귀인(貴人)에 책봉 |
활동 시기/일시 | 1702년 10월 18일 - 명빈 박씨 명빈(䄙嬪)에 책봉 |
몰년 시기/일시 | 1703년 7월 15일 - 명빈 박씨 사망 |
묘소|단소 | 묘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
묘소|단소 | 묘소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 |
성격 | 후궁 |
성별 | 여 |
본관 | 밀양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에 안장되었던 조선 후기 숙종의 후궁.
[개설]
명빈 박씨(䄙嬪 朴氏)[?~1703]는 숙종의 후궁이자 연령군(延齡君)의 어머니로 1703년(숙종 29) 병으로 사망하였다. 사망 후 오늘날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지역에 안장되었다가 1940년 충청남도 예산으로 이장되었다.
[가계]
명빈 박씨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박효건(朴孝健)이다.
[활동 사항]
명빈 박씨는 상궁(尙宮)으로 숙종의 승은을 입었으나 거의 10여년 간 후궁(後宮)으로 봉해지지 못했다. 그 사이에도 숙종은 박씨를 후궁에 임명하려는 뜻이 있었으나 새로운 후궁을 머물게 할 관(館)이 마땅치 않다는 사정으로 미뤄지다가 1698년(숙종 24) 회임하면서 비로소 종4품 숙원(淑媛)에 봉해졌다. 이듬해에는 숙종이 노산군(魯山君)을 ‘단종대왕(端宗大王)’으로 복위시킨 것을 경하하는 뜻으로 숙원 박씨를 숙의(淑儀)로 승급시켰다.
1701년(숙종 27)에는 종1품 귀인(貴人), 1702년(숙종 28)에는 정1품 명빈(䄙嬪)에 봉해졌으나 이듬해 병으로 사망하였다. 숙종은 명빈 박씨의 장례를 위해 제수(祭需)를 후하게 지급하고 관(棺)의 제작을 위한 판재(板材)도 제공하게 했는데, 목재의 재질이 좋지 못하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담당 관원을 엄히 처벌하기도 하였다. 명빈 박씨의 아들인 연령군은 2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고, 연령군의 뜻에 따라 어머니인 명빈 박씨의 묘 옆에 묻혔다.
[묘소]
오늘날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인 경기도 금천현(衿川縣) 번당리(樊塘里)에 안장되었으나 일제 강점기 경성부의 구획정리로 인해 1940년 연령군의 묘와 함께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로 이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홍재전서(弘齋全書)』에는 정조가 명빈 박씨의 묘소에 올린 다음과 같은 제문(祭文)이 수록되어 있다.
명릉의 재위 시절에[明陵在宥]
교화가 규목에 흡족하였으니[化洽樛木]
빈이 오직 모시는 도리를 갖춤에[嬪惟備御]
일찍부터 지극한 정성이 드러났네[夙著洞屬]
어질도다 연령군이여[賢哉延齡]
엄연히 한 언덕에 묻혀 있도다[有儼同岡]
제관을 시켜 잔을 드리게 하니[伻官致酹]
석상이 위아래로 있다네[上下石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