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5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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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讚頌歌 |
영어공식명칭 | Songs of Praise Union Hymnal of The General Council of The Protestant Evangelical Missions in Korea |
이칭/별칭 | 『찬숑가』,Union Hymnal, Songs of Praise |
분야 | 종교/기독교,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단행본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원재연 |
저술 시기/일시 | 1892년 - 『찬미가』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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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 시기/일시 | 1894년 - 예수셩교회당, 『찬송가』 발행(발행인은 언더우드(H.G.Underwood) |
저술 시기/일시 | 1895년 - 예수교회당, 『찬셩시』 발행(장로교회 발행)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02년 - 장로교 공의회가 개신교 찬송가 합동문제를 제기하여 ‘통합공의회 찬송가위원회’ 조직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05년 - 개신교의 장로교, 감리교 등 6개 교파가 선교사연합공의회에 참여 |
편찬 시기/일시 | 1908년 - 『찬송가』 발행 |
간행 시기/일시 | 1949년 -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등 개신교 3교파가 찬송가를 하나로 통일하여 『합동찬숑가』 편집, 발행 |
간행 시기/일시 | 1983년 - 한국찬송가공회, 『통일찬숑가』 간행(『합동찬숑가』(1949) 『새찬숑가』(1962), 『개편찬숑가』(1967)을 통합)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6년 12월 15일 - 찬송가(UNION HYMNAL)를 문화재로 등록 예고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7년 2월 15일 - 『찬송가』 국가등록문화재 제675호 지정 |
소장처 |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로 369[상도동 511] |
성격 | 기독교 찬송가 |
편자 | 베어드(A.L.A.Baird), 밀러(F.S.Miller), 벙커(D.A.Bunker) 등 |
번역자 | 언더우드(H.G.Underwood) |
간행자 | 통합공의회 찬송가위원회 |
표제 | 찬숑가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한국 최초의 개신교 교파연합 찬송가.
[개설]
한국 개신교 선교 역사상 최초로 서구의 찬송가를 우리말로 번역하여 사용한 것은 1892년 감리교 선교회가 편찬한 『찬미가』였다. 이에 장로교 측에서도 우리말 찬송가를 편찬하기에 이르러 1894년 북장로교에 속하는 언더우드(H.G.Underwood) 목사가 『찬양가』를 발행했으나 북장로교회의 인준을 받지 못하고, 북장로교는 1895년 간행한 『찬셩시』를 공식 인준하였다.
1902년부터 장로교 공의회는 교회일치운동[Ecumenical Movement]의 일환으로 장로교 외의 다른 개신교 교파들과 공통된 찬송가집을 간행하기로 결의했고, 1905년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의 장로교, 감리교 6개 교단은 연합공의회를 결성하여, 1908년 최초의 개신교 연합 찬송가인 『찬송가』를 편집 간행하였다.
주편집자인 베어드(A.L.A.Baird) 부인은 대중적 인기가 있었던 언더우드 목사가 번역한 가사를 주로 사용하면서, 한국인의 감성에 익숙한 곡조를 가장 쉬운 한글로 작사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 결과 한국의 여성 신자들은 찬송가를 부르면서 한글을 익힐 수 있게 되어, 초판에 6만 부 이상이 간행되었고 1931년 43판이 발행되기까지 총 87만 4,500여 부나 간행되는 등 대중적 보급의 성공적 사례를 증명했다.
『찬송가』는 일제에 국권이 침탈되던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 내내 우리말과 우리 역사에 대한 왜곡과 억압의 질곡 속에서도 개신교 신자들이 찬송가를 통해 그리스도 신앙과 함께 민족애를 간직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편찬/간행 경위]
1892년 개신교 감리회가 악보없이 가사만 수록된 최초의 찬송가집 『찬미가』를 발행했고, 1894년 북장로교회 목사인 언더우드가 악보와 가사가 함께 수록된 최초의 찬송가집 『찬양가』를 발행했다. 그러나 북장로교회의 인준을 받지 못하고, 1895년 북장로교회의 예수교회당이 『찬셩시』를 발행하였다. 1902년 한국 장로교 공의회에서 기존에 장로교회가 사용해 온 『찬양가』와 『찬셩시』 중에서 『찬셩시』를 공식 찬송가로 채택하면서 감리교 등 다른 개신교 교파와 연합하여 찬송가를 발행하기로 결의했다.
1905년 미국 북장로회, 미국 남장로회, 캐나다 장로회, 호주 장로회, 미국 북감리회, 미국 남감리회 등 6개 선교회가 합동하여 재한복음주의선교부연합공의회[The Genernal Council of Protestant Evangelical Mission in Korea]를 결성하였고, 통합공의회 찬송가위원회를 조직하였다. 1908년 통합공의회 찬송가위원회가 총 262곡의 가사만을 수록한 『찬송가』를 편찬 발행하였다.
[서지적 상황]
『찬송가』는 크기 15.1㎝×11.5㎝이며, 262곡이 수록되어 있다. 순한글로 작성되었고 274쪽 분량이다. 1908년 초판의 발행부수는 6만부 이상이었고, 1930년까지 모두 43판 발행에, 총 87만 4,500부나 간행되었다.
[형태]
1908년 발행한 『찬송가』의 원본 중의 하나로서 언더우드가 1894년 1차 간행한 『찬양가』의 판본에는 악보가 실려있었으나, 1895년 간행한 제2판부터는 악보가 생략되었다. 악보가 없어진 이유는 당시 대부분의 찬송가를 벽걸이 족자의 형태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905년 장로교공의회에서 발행한 공인 찬송가 제9판에 악보가 다시 실렸고 1907년 제12판에도 악보가 실렸다. 1916년 수정, 재간행한 『찬송가』에는 다시 악보가 동반되었고 맨 뒷부분에 영어본 찬송가 목차 index가 부록으로 붙어있다.
[구성/내용]
『찬송가』의 수록 곡수는 점차 늘어나서 언더우드 목사의 『찬양가』의 경우, 1894년 제1판은 117곡, 1895년 제2판 151곡, 1896년 제3판 160곡, 1898년 제4판 164곡, 1900년 제5판 182곡이 각각 수록되었다. 1908년 『찬송가』에는 262곡, 1916년 『찬송가』에는 266곡이 실렸다.
1908년 『찬송가』 서문에는 장로교와 감리교 두 교파의 신자들이 하느님을 찬송하는 온전한 즐거움을 추구한 통합 찬송가의 의미를 기술했다. 본문 내용은 20개 조항으로 나뉘어지는데, 「찬송과 예배」, 「예수 그리스도」, 「예수의 탄생」, 「속죄」, 「부활」, 「성신」, 「성공회」, 「안식일」, 「죄인에 대한 책망」, 「회개」, 「구원」, 「그리스도인 경험」, 「사랑」, 「믿음」, 「인도」, 「헌신」, 「근실한 용력」, 「교통」, 「하늘나라」, 「혼잡」 등이다. 찬송을 부르는 방법은 인도자가 먼저 한 줄을 선창하면 대중이 가사와 곡을 그대로 따라한 후에 다음 줄로 넘어가는 반복적 방법을 통하여 대중이 익히는데 편의를 추구했다.
[의의와 평가]
1903년 장로교공의회는 성경과 찬송가를 한글 전용 원칙으로 결정했으며, 이를 계승한 1908년 『찬송가』의 주편집자인 베어드 부인은 영어로 된 원곡을 최대한 쉬운 한글로, 우리말의 억양을 잘 살려 번역하였다. 이에 따라 일부 기독교 신자들은 성경을 읽기 전에 찬송가를 구입하여 교리를 익혔고, 여성들은 찬송가를 부르면서 한글을 깨우치기도 했다. 또한 반복적인 구절을 많이 넣어서 익힘에 편의를 추구하였고 한국 고유의 곡을 붙인 「Korean Music」을 편성하는 등 한국인에게 널리 보급될 수 있는 찬송가 토착화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리하여 1908년 장로교와 감리교가 합동으로 편찬한 『찬송가』는 한국 개신교 역사에서 최초의 교회일치 운동의 단초를 열었고, 서민에게 친화적이고 보편적인 민족의 문자인 한글을 전용함으로써 일제 강점기 국권을 상실한 한국인 기독교 신자들에게 그리스도 신앙과 함께 민족애를 간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그래서 해방 이후 2020년 현재까지도 한국 개신교의 주류를 점하는 찬송가 가사 작성 및 외국 찬송가 번역의 대중적, 애국적 원칙을 수립할 수 있었다고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