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5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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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重根義士遺墨 |
영어공식명칭 | Calligraphies by General of Korean Righteous Army, An Joongkeun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원재연 |
작성 시기/일시 | 1910년 2월 - 「안중근의사유묵」(「제일강산」)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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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 시기/일시 | 1910년 2~3월 - 「안중근의사유묵」 작성 |
작성 시기/일시 | 1910년 3월 - 「안중근의사유묵」(「장부수사심여철 의사임위기사운」, 「동양대세사묘현 유지남아기안면 화국미성유강개 정략불개진가린」) 작성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45년 해방 이후~1972년 8월 이전 - 「안중근의사유묵」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기증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2년 8월 16일 - 「안중근의사유묵」 보물 제569-5호, 제569-12호, 제569-14호 지정 |
소장처 |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로 369[상도동 511] |
발급처 | 여순 감옥에 수감 중인 안중근 의사 -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 뤼순시 뤼순커우구 |
성격 | 유묵 |
관련 인물 | 안중근|오리타 타다스[折田督]|치바 도시치[千葉十七]|구리하라[栗原]|경수계장 나카무라[中村]|통역 소노키 쓰에키[園木末喜]|검찰관 미조부치 다카오[溝淵孝雄]|검찰관 야스오까[安岡]|변호사 미즈노[水野]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제569-5호|보물 제569-12호|보물 제569-14호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보관된 안중근 의사의 민족애와 애국심이 잘 표현된 3점의 유묵.
[개설]
「안중근의사유묵」은 1909년 10월 하얼빈[哈爾濱] 의거로 11월 3일 여순 옥중에 수감된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26일 사형집행 전까지 붓으로 쓴 뒤 간수, 전옥, 검찰관, 변호인 등 일본인들에게 기증한 서예작품 200여 점 중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3점이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 역두에서, 대한제국을 침략하여 일제의 반식민지로 삼아버린 일제의 정객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대한독립군 특파대장의 자격으로 사살함으로 전 세계에 대한독립의 의지와 대한 남아의 기개를 떨치는 민족적 쾌거를 보여주었다. 1주일 후인 11월 3일 안중근 의사는 일제의 관할 하에 있는 만주 여순(旅順) 감옥에 입감되고 일제의 심문을 받으며 재판을 받게 되는데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 받고 3월 26일 사형을 집행당한다.
안중근 의사가 여순 감옥에 갇힌 4~5개월 동안 감옥이나 재판정에서 안중근 의사를 대면 접촉한 다수의 일본인들은 안중근 의사의 애국심과 의사로서의 기개, 놀라운 인품 등에 감탄하여 한자로 휘호를 부탁하는 이가 늘어났다. 이에 안중근 의사는 간수 오리타 타다스[折田督], 간수 치바 도시치[千葉十七], 전옥 구리하라[栗原], 경수계장 나카무라[中村], 통역 소노키 쓰에키[園木末喜], 검찰관 미조부치 다카오[溝淵孝雄], 검찰관 야스오까[安岡], 변호사 미즈노[水野] 등 유묵을 부탁한 주위 일본인들에게 필요한 글자를 한문 붓글씨로 써서 인장 대신에 왼손 수장을 찍어 주었다. 수장은 1909년 음력1월 연해주 카리에서 동의단지회 12명의 동지가 함께 모여 왼쪽 약지를 잘라서 독립의 의지와 결의를 다지면서 태극기에 ‘대한독립’이라고 혈서로 쓴 일을 되새기게 해준다.
2020년 현재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보관된 안중근 의사의 유묵 3점은 1972년 국가문화재로 등록되면서 각각 보물 제569-5호, 제569-12호, 제569-14호로 각각 지정된 문화재이다. 1948년 4월 김양선 목사가 주도하여 설립한 한국기독교박물관에 기증되었거나 김양선 목사가 고서점 등에서 구입한 작품들로 1967년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의 개관 때 기증되었다.
[제작 발급 경위]
「안중근의사유묵」은 독립운동가 박은식에 의하면 대략 200여 점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되지만, 학계에 알려진 50~60종 중에 유묵의 기증 시점, 전달자, 전달과정 등이 구체적으로 밝혀진 예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의 유묵은 안중근이 여순 감옥에 갇혀서 심문을 받거나 재판정에 왕래하다가 사형 당하기 직전까지인 1909년 11월3일부터 1910년 3월 26일까지 약 4~5개월 동안 안중근 의사를 대면 접촉할 수 있었던 여순 감옥의 간수, 전옥, 검찰관, 변호인 등 일본인들에게 기증한 것으로 알려질 뿐이다.
2020년 현재 숭실대학교에 보관 중인 3점의 「안중근의사유묵」 중 1점인 「제일강산」은 1910년 2월에, 나머지 2점은 1910년 3월에 각각 작성되었다. 해방 이후 김양선 목사가 설립을 주도한 한국기독교박물관의 설립 시점인 1948년 4월 전후한 시점부터 김양선 목사에게 입수되어 보관, 전시되었다가, 1967년 신설된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김양선 목사가 기증한 것이다. 3점의 유묵은 1972년 8월 16일 보물 제569-5호, 569-12호, 569-14호로 지정되고 국가문화재로 각각 등록되었다.
[형태]
「안중근의사유묵」 3점은 각각 「동양대세사묘현 유지남아기안면 화국미성유강개 정략불개진가린」은 138.5㎝×36.0㎝, 「장부수사심여철 의사임위기사운」은 136.0㎝×31.8㎝, 「제일강산」은 38.6㎝×96.7㎝의 크기이다.
[구성/내용]
보물 제569-14호인 「제일강산(第一江山)」에는 1910년 2월 대한제국이 일제의 반식민지로 전략한 상태이지만 천하에서 제일 좋은 강토라는 뜻으로,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과 민족애가 잘 표현되어 있다.
보물 제569-5호인 「동양대세사묘현 유지남아기안면 화국미성유강개 정략불개진가린(東洋大勢思杳玄 有志男兒豈安眠 和局未成猶慷慨 政略不改眞可憐)」은 7언절구의 한시 형태로 되어 있다 “동양의 대세를 생각하면 아득하여 잘 알 수 없으나, 뜻있는 대한의 남아로서 어찌 편안히 잠 잘 수 있겠는가? 평화 시국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하여 비분 강개하지만, 일본 제국주의는 그 침략적인 정치 계략을 아직도 고치지 않고 있으니 진실로 가련하고 애처롭도다.”라는 뜻이다.
보물 제569-12호인 「장부수사심여철 의사임위기사운(丈夫雖死心如鐵 義士臨危氣似雲)」은 7언의 두 구절로 된 한시인데 그 뜻은 “장부가 비록 죽음에 임하나 마음은 쇠와 같이 강하여 흔들리지 않고, 의로운 지사가 위기에 임박해도 기운은 구름과 같이 무궁하다”라고 해석되며, 사형을 목전에 두고도 대한 독립의 기개와 자주 정신으로 충만한 안중근 의사의 애국심과 활달한 기상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보관 중인 「안중근의사유묵」 3점은 1972년 각각 보물로 지정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의 국권이 침탈되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되어 갈 무렵에 쓰여진 안중근 의사의 민족적 자긍심과 불타는 애국심, 그리고 정의로운 독립지사로서의 불굴의 기상을 잘 보여주는 서예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