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526 |
---|---|
한자 | 李檗先生夢會錄 |
영어공식명칭 | Discourse in a Dream of Lee Byeok |
이칭/별칭 | 이벽선생몽회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엄기석 |
저술 시기/일시 | 1777년 - 『니벽선생몽회록』 저술 |
---|---|
소장처 |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로 369[상도동 511] 숭실대학교 |
성격 | 고문헌|소설 |
저자 | 정약종(丁若鍾) |
권책 | 1책 |
규격 | 32.0㎝×19.8㎝ |
권수제 | 니벽전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문인 정약종이 지은 소설.
[개설]
『니벽선생몽회록(李檗先生夢會錄)』은 조선 후기 천주교 전래 초기에 교단의 지도자 역할을 하였던 실존인물 이벽(李檗)[1754~1785]과 정학술(丁學術)이라는 가공 인물의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저자]
『니벽선생몽회록』의 저자인 정약종(丁若鍾)[1760~1801]은 정약현(丁若鉉)·정약전(丁若銓)·정약용(丁若鏞) 4형제 중 셋째이다. 성호 이익(李瀷)으로부터 학문을 배웠고, 서학서(西學書)를 접하면서 당대 가톨릭 교리에 가장 밝은 인물로 손꼽혔다. 일반 대중을 위해 한문본 교리책에서 중요한 내용을 선별하여 한글로 된 『주교요지(主敎要旨)』를 만들어 천주교 전파에 영향을 끼쳤다. 1801년 주문모 입국사건에 연루되어 이승훈(李承薰)·최창현(崔昌顯)·홍낙민(洪樂敏) 등과 함께 서소문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형태/서지]
『니벽선생몽회록』은 32.0㎝×19.8㎝의 크기이고, 겉 표지의 표제는 ‘니벽전’으로 되어 있으며 속 표제는 ‘니벽선생몽회록’이라고 되어 있다. 매면 10행, 매행 18자 내외의 글로 구성되어 있는 필사본이다.
[구성/내용]
『니벽선생몽회록』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번째 부분은 죽은지 60년 만에 신선과 같이 등장한 이벽과 정학술 사이의 대화체 이야기이다. 이벽은 우주창조의 원리, 낙원 추방, 예수의 구원 및 유교·불교·도교의 허망함을 논하고 조상숭배와 우상숭배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학술에게 전해주었다. 두 번째 부분은 이벽이 지었다고 간주되는 천주밀험기를 인용하여 하나님의 심판과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간략히 설명한 내용이다. 세 번째 부분은 출생부터 성장과 죽음에 이르는 이벽의 생애를 간략하게 담고 있다. 꿈의 형식을 빌린 몽유록 형태의 소설로, 몽중 설화자가 실제인물이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니벽선생몽회록』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한국에 기독교가 유입된 18세기 당시 조선인의 기독교 수용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또한 유교·불교·도교를 부정하는 당시의 새로운 사상인 서학을 설득하고 있으며, 천주밀험기라는 예언서를 통해 이벽의 환생을 통해 천주의 재림을 예언하고 있는 점, 그리고 신유년(辛酉年)[1801년]과 기해년(己亥年)[1839년]의 박해를 예언하고 있는 점에서 문학적·종교적·역사적 가치가 높은 기록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