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1267 |
---|---|
한자 | 銅雀渡 |
이칭/별칭 | 동작나루를 지나며,동작나루를 건너며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국제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762년 6월 16일 - 정약용 출생 |
---|---|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801년 11월 9일 - 「동작도」 저술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836년 2월 22일 - 정약용 사망 |
배경 지역 | 동작나루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
성격 | 한시|7언 고시 |
작가 | 정약용 |
[정의]
조선 후기 문신 정약용이 1801년 서울특별시 동작 지역에 있던 동작나루를 건너며 지은 한시.
[개설]
「동작도」는 다산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 1801년 소과시험에 낙방한 후 아내와 함께 아버지가 계시는 오성[현재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가기 위하여 동작나루를 건너며 지은 시이다.
[구성]
「동작도」는 7언 고시로 구성되어 있는 시이다. 정약용의 저서 『여유당전서』 제1집 제4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동작도(銅雀渡)[동작나루에서]
동작추풍기(銅雀秋風起)[가을바람 이는 동작나루에서]
오성억묘연(烏城憶杳然)[오성을 생각하니 아득하구나]
관재청죽리(官齋箐竹裏)[푸른 대숲 속에 마을이 있고]
서실국화전(書室菊花前)[국화꽃 핀 그 앞에 서재가 있네]
원축수양안(遠逐隨陽雁)[기러기 따라 멀리 가야 하건만]
서회범학선(徐回汎壑船)[배는 천천히 돌아 느리기만 하네]
여유비불락(旅游非不樂)[여행이 즐겁지 않은 것은 아니나]
행매념친년(行邁念親年)[부모님 늙어 가심이 염려가 되네]
[특징]
다산 정약용은 생전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500여 권의 책과 함께 화성을 건축할 당시 기중기 제작, 정조의 화성 행차 시 배다리 설치 등 다재다능함을 보여준 조선 최고의 실학자였다. 그러나 뛰어난 재능 탓이었는지 몰라도 생의 대부분을 유배생활로 보내야 했던 비운의 학자이기도 하였다.
정약용의 삶 속에 동재기나루터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1779년 9월에 쓴 「동작도(銅雀渡)」라는 시를 통해서다. 「동작도」는 정약용이 18세 되던 1801년, 소과시험을 쳤으나 낙방을 하고 아내와 함께 당시 화순현감으로 재직하고 있던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에 동작나루를 건너며 쓴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