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1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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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黑石洞 都市型 韓屋 |
이칭/별칭 | 개량한옥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혜숙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에 1930년대 후반부터 지어졌던 개량한옥.
[개설]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서울을 비롯한 도시 지역에는 흔히 ‘개량한옥(改良韓屋)’이라 불리던 도시형 한옥이 들어섰다. 주택개발업자들이 개발하여 대량으로 공급하였던 개량한옥은 기존의 전통한옥을 도시 생활에 맞게 변형한 주택으로서 ‘집장수 집’이라고도 불렸다. 이러한 도시형 한옥이 동작구 흑석동 일대에 건축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후반부터였다.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도 흑석동 235번지와 243번지 일대에 도시형 한옥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고, 그 위치는 현재의 중앙대학교 캠퍼스와 은로초등학교 사이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도시형 한옥이 흑석동 전체에 산재되어 있지 않고 일정한 구역 내에 밀집했던 이유는 도시형 한옥의 경우 대개 집을 지어 파는 사업자[집장수]가 대형 필지에 일정한 규격으로 여러 채를 한꺼번에 지어서 판매했기 때문이다.
[흑석동 도시형 한옥의 특징과 변화]
서울 지역 도시형 한옥의 규모는 대개 82㎡형에서 116㎡형 사이였으며, 평면은 ‘ㄷ’자 형식이 전형적이고 필지가 큰 경우에만 ‘ㅁ’자 형식을 취하였다. 또한 주택의 규모는 달라도 기본 칸수가 비슷하여 방의 크기가 작은 경우가 많았다. 흑석동의 도시형 한옥도 서울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였는데 대체로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으로 구성된 ‘ㄱ’자형 안채와 문간방, 대문간, 측간으로 구성된 ‘一’자형 문간채가 결합된 ‘ㄷ’자형 공간구성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도시형 한옥은 거주하는 과정에서 생활의 편의나 임대 등을 위해 건축 당시와는 다른 형태로 변형되었고, 흑석동에서도 그러한 양상이 나타났다. 흑석동 일대의 도시한옥 주거지는 한 주택에 여러 가구가 분할, 거주하는 일이 빈번하여, 현재와 같은 다세대주택 또는 다가구주택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실질적으로 다가구주택에 해당하였다. 대개 주인은 안채를 사용하고 문간채는 세를 주었는데, 바로 옆에 중앙대학교가 있어 대학생의 자취방으로도 이용되었다. 이때 마당과 화장실은 공유하였으나 셋집을 위해 부엌을 새로 만들어 주거나 아예 출입구를 길가 쪽으로 따로 내는 경우도 있어, 도시형 한옥의 변형이 발생하였다.
한편 난방 기술의 발달이나 입식 생활의 보급도 흑석동 도시형 한옥의 개조에 영향을 미쳤다. 도시형 한옥의 대청은 원래 마룻바닥으로 되어 있어 겨울에는 난방이 되지 않았으나, 흑석동의 도시형 한옥에서는 마루를 없애고 구들을 설치하여 겨울에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거실로 개조한 집이 다수였다. 사실 기존의 한옥은 방마다 아궁이가 따로 있는 개별난방 방식이었으나 새마을보일러나 가스보일러의 설치가 가능해지고 석유풍로와 가스레인지 등이 보급되면서 난방열과 조리열을 분리시킨 가옥 개조가 가능해졌다. 이에 재래식 부엌의 바닥을 높이고 싱크대와 수납장을 설치한 후 입식 부엌으로 만들었으며, 주로 마당과 연결되어 있던 부엌은 거실과 이어진 실내 공간이 되어 신발을 벗고 드나드는 곳이 되었다.
한편 부엌 위에는 대개 다락을 설치하여 수납공간으로 활용하였으나, 부엌을 개조하기 위해 바닥을 높이면서 다락이 도시형 한옥에서 사라졌다. 다락과 마찬가지로 마당 한구석에 있던 장독대 또한 변화를 맞았다. 도시형 한옥의 한켠에 평지붕을 한 다용도실과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을 만들어, 그 지붕 위에 장독을 두고 다용도실은 광으로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현황]
1984년 임대주택건설촉진법 제정 이후 등장한 다세대주택, 1990년 법제화된 다가구주택의 영향으로 1990년대 이후 도시형 한옥을 허물고 다세대 또는 다가구주택으로 신축하는 일이 급증하였다. 그 결과, 현재는 흑석동의 한옥 주거지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