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9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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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義理的 仇討 |
영어공식명칭 | Fight for Justice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작품/음악·공연 작품 및 영상물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한상언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 일대에서 촬영한 연쇄극으로 한국 최초의 영화.
[개설]
단성사 사주였던 박승필이 5천원의 자금을 출자하고 김도산이 이끌던 신극좌에서 제작한 연쇄극이다.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처음 상영되었으며 조선인의 자본과 조선인 극단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으로 한국 최초의 영화로 인정 받고 있다. 당시 단성사에서는 연쇄극을 제작하기 위해 일본에서 촬영기사 미야가와 소우노스케를 초빙해 왔고 신극좌에서는 신파극의 일부 장면을 서울의 주요 장소에서 영화로 촬영했다. 촬영장소는 한강철교, 장충단, 청량리, 남대문정차장, 뚝섬, 살곶이다리, 노량진 등이며 신파극 공연 도중 기차와 자동차를 이용한 추격장면들이 영화필름으로 삽입되었다.
[공연 상황]
1919년 10월 27일부터 11월 2일까지 단성사에서 공연되었다. 연쇄극 「의리적 구토」[전 8막] 외에 실사영화인 「경성(京城) 전시(全市)의 경(景)」이 함께 상영되었다. 입장료는 특등 1원 50전, 1등 1원, 2등 60전, 3등 40전 군인, 학생, 소아는 반액이었다.
[내용]
연쇄극 「의리적 구토」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송산이 주인공이다. 그는 일찍이 모친을 잃고 계모 슬하에서 불우하게 자라났다. 재산을 탐내는 계모에 의해 가정엔 항상 재산을 둘러싼 알력이 심했다. 송산은 새 뜻을 품고 추잡한 가정을 떠나 좀 더 참된 일을 하다가 죽으려는 결심을 한다. 우연히 뜻을 같이 하는 죽산과 매초를 만나 의형제를 맺고 정의를 위해 싸울 것을 다짐한다. 한편 계모의 흉계는 날로 극심해 가서 송산을 제거하려는 음모까지 모의하게 된다. 송산의 신변이 위태로워짐을 알게 된 의동생 죽산과 매초가 격분해서 정의의 칼을 들려 하지만 송산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이를 말린다. 송산은 가문과 부친의 위신을 생각해서 모든 것을 꾹 참고 견디려 한다. 자연 마음이 울적하고 괴로운 송산은 매일 술타령으로 보낸다. 하지만 계모 일당의 발악이 극도에 올라 송산의 가문이 위기에 이르게 되고 송산은 죽산과 매초와 함께 눈물을 머금고 정의의 칼을 든다.
[의의와 평가]
1915년부터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들 사이에서 상연되던 연쇄극을 1919년 한국인 자본과 한국인 제작진, 배우들이 제작한 것으로 한국 최초의 영화이다. 1919년 10월 이후 1921년 무렵까지는 연쇄극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여러 신파극단에 의해 많은 수의 작품이 제작되었다. 연쇄극은 본격적인 극영화 제작의 과도적 형태였으며, 「의리적 구토」는 조선인들이 주도적으로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하였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동작구 노량진에서 일부 장면을 촬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