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8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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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蓮庵 |
이칭/별칭 | 청련사(淸蓮寺),노씨절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등용로 40-9[대방동 3-8]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한승훈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860년 - 쳥련암 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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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건립지 | 청련암 -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1 |
현 소재지 | 청련사 - 서울특별시 동작구 등용로 40-1[대방동 1] |
성격 | 종교 시설|사찰 |
전화 | 02-812-5247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에 있었던 한국불교태고종 소속 사찰.
[개설]
청련암(靑蓮庵)은 대방동 1번지 높은 고개에 있던 사찰로, 청련암으로 인해 이 일대는 과거 고사리(高寺里)라 불리었다.
한편 청련암과 관련해서 “한국전쟁 당시 네 명의 인민군이 사찰 주변에서 가축을 도살하였는데, 분노한 신장(神將)이 그 자리에서 금강철퇴로 그들을 때려죽였다고 한다.”, “청련암의 산신이 영험하여 기도를 하면 반드시 이루어주었는데, 1970년대 말 이 지역이 개발되어 집들과 화장실이 들어서자 산신탱화를 산신각에서 법당 안으로 옮겼다. 이때 주지와 신자들의 꿈에 산신이 나타나 “나는 집이 없으니 산으로 가겠다”며 떠났다. 이후 절의 신도가 줄어들고 쇠락하자 매년 10월 상달에 산신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는 전승이 전해지고 있다.
[건립 경위 및 변천]
청련암의 창건에 관해서는 명확한 문헌 자료가 발견되지 않는다. 크게 신라 때 원효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전승과 조선 세조[재위 1455~1468년] 때 노사신(盧思愼)의 시주로 세워졌다는 전승이 있다. 후자에 의하면, 노사신이 부친의 묘를 쓰고 있는데 옆의 움막에 한 승려가 있어 그에게 시주를 하고 염불을 부탁한 것이 절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이는 청련암이 노씨네가 많이 모시고 있다 해서 ‘노씨절’이라고 불린 것과도 관련이 있는 전승으로 보인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 봉은사의 말사로 소속되었다.
[관련 문화재]
2009년 8월 13일에 청련암에서 소장하고 있었던 청련사 산신도(山神圖)[1882년 조성]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90호로, 청련사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1914년 조성 추정], 청련사 아미타불도(阿彌陀佛圖)[1914년 조성], 청련사 신중도(神衆圖)[1906년 조성], 청련사 칠성도(七星圖)[1914년 조성]가 각각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47~50호로 지정된 바 있다. 이후 이들 문화재의 소재지가 경북 칠곡군 법성사로 변경되면서 2013년 1월 3일부로 문화재 지정이 해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