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6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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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恩喜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이미영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에 3·1공원 조성을 주장한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개설]
최은희(崔恩喜)[1904~1984]는 일제강점기에 3.1운동에 참여하였고 근우회 집행위원을 역임하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이며, 자신의 생애를 비롯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시대를 기록하여 여성의 역사를 정사(正史)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 여성 기자이다.
[가계]
최은희의 아버지는 최병규이다.
[활동 사항]
최은희는 1919년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시 서울 탑골공원과 고향 황해도 연백에서 3.1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두 차례 감옥살이를 하였다. 이후 1924년 10월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8년 동안 취재 현장에서 활동하였다. 당시 아편굴과 매음굴 취재로 화제를 모았다. 1924년 11월 23일 『조선일보』에 가정란을 신설해 「첫 길에 앞장선 이들」을 26회에 걸쳐 연재하였다. 1926년 6·10 만세운동을 호외로 보도하면서 언론인으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1927년 5월 유영준, 황신덕과 함께 조선 여성의 지위 향상과 계몽운동·여성해방·민족운동 등을 목표로 설정하고 근우회 발기인 및 창립준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여성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45년 9월 여권 실천운동자 클럽을 조직하고, 『여성신문』의 고문과 대한여자국민당 서울시 당수(黨首)에 취임하여 활동하는 등 활발하게 사회적 활동을 재기하였다. 1967년 4월 15일 ‘독립공원을 설립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신문에 투고하였고, 1967년 5월 15일 영등포구 사당동 24-1번지에서 3·1공원 조성식 행사를 개최하였다. 3·1녹원 식수 거행식은 3·1운동에 참가하였던 할머니들의 주도 하에 개식사, 경과보고, 기념사, 만세삼창 등이 진행되었다.
1983년 조선일보사에 평생 모은 재산을 기탁하며 여기자상 제정을 부탁하였고, 최은희가 사망한 1984년부터 지금까지 매해 ‘최은희 여기자상’이 수여되고 있다.
[저술 및 작품]
『씨뿌리는 여인』[1957], 『근역의 방향』[1961], 『조국을 찾기까지-1905-1945년 한국여성활동비화』[1973], 『여성전진 70년-초대 여기자의 회고』[1980]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84년 ‘최은희 여기자상’이 제정되었다.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고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2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수정일 | 제목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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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9 | 최은희의 인물 정보 수정 | 최은희는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임 |
2023.06.19 | 독립운동가로서의 이력 추가 | 최은희(崔恩喜)[1904~1984]는 일제강점기 3.1운동에 참여하였고 근우회 집행위원을 역임하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이며, 자신의 생애를 비롯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시대를 기록하여 여성의 역사를 정사(正史)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 여성 기자이다. |
2023.06.19 | 최은희 활동사항 추가 | 1919년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시 서울 탑골공원과 고향 황해도 연백에서 3.1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두 차례 감옥살이를 하였다. 는 정보 추가 |
2023.06.19 | 상훈과 추모 내용 추가 | 1992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고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2묘역에 안장되어 있다.는 정보 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