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6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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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殷瓚 |
이칭/별칭 | 여해(汝海),언찬(諺瓚),헌찬(憲瓚)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박우현 |
출생 시기/일시 | 1878년 - 이은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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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7년 9월 - 이은찬 의병 봉기 |
활동 시기/일시 | 1907년 12월 - 이은찬 13도창의군 참가 |
몰년 시기/일시 | 1909년 6월 16일 - 이은찬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62년 - 이은찬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
출생지 | 이은찬 출생지 - 강원도 원주군 부흥사면 |
묘소 |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 106 -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 |
성격 | 의병장 |
성별 | 남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개항기 의병장.
[개설]
이은찬(李殷瓚)[1878~1909]은 정미의병에 가담했던 의병장으로 1907년 12월 결성된 13도의병연합부대의 중군을 이끌었다.
[가계]
이은찬의 본관은 전주이다. 자는 여해(汝海)이며 이석하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이은찬은 1878년 강원도 원주군 부흥사면에서 태어났다. 1896년 2월 1907년 이기찬(李起燦)·허위(許蔿)·조동호(趙東鎬) 등과 함께 경북 김천(金泉)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907년 고종이 퇴위하고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자 같은 해 7~8월 고향 원주에서 해산 군인 80여명을 모집해 의병을 일으켰다. 8월 말경 경북 문경(聞慶)에 은둔하던 이인영(李麟榮)을 찾아가 의병의 총대장이 되어줄 것을 청하고 원주로 돌아와 전국으로 격문을 띄워 의병을 모으고 경기도 양주로 집결할 것을 촉구했다. 이것이 13도의병연합부대가 모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이은찬은 13도의병연합부대가 편성되자 원수부13도총대장인 이인영의 중군이 되었다. 1908년 1월 서울진공작전을 개시하였으나 실패했다. 서울진공작전이 실패한 뒤에도 이은찬은 2월 경 경기 동북지역과 임진강 유역을 근거지로 이동해 다시 의병연합을 모색했다. 그 결과 허위와 합류해 3~4월 경 임진강 연합의병을 결성하고 의병활동을 계속했다.
이은찬은 1909년 2월 이후 의병부대를 해산하고 북간도로 들어가 무장투쟁계획을 세웠으나 밀정 박노천(朴魯天)·신좌균(申左均) 등의 모사에 빠져 3월 31일 용산역에서 잠복하고 있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5월 8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6월 16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묘소]
이은찬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 106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