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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646
한자 申圭植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장경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9년 1월 13일연표보기 - 신규식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00년 - 신규식 육군무관학교 입학
활동 시기/일시 1902년 - 신규식 육군보병참위 임관
활동 시기/일시 1909년 - 신규식 교장 취임
활동 시기/일시 1913년 - 신규식 박달학원 설립
활동 시기/일시 1915년 - 신규식 신한혁명단 상해지부장 부임
활동 시기/일시 1920년 - 신규식 『진단』 잡지 발간
몰년 시기/일시 1922년 9월 25일연표보기 - 신규식 사망
묘소 국립서울현충원 임시정부요인묘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 지도보기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독립운동가.

[개설]

신규식(申圭植)[1879~1922]은 대한제국 말 육군에 몸담았으며 이후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상해 일대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이다.

[가계]

신규식의 아버지는 신용우이다.

[활동 사항]

신규식(申圭植)은 1879년 1월 13일 충청북도 문의군 동면 계산리에서 태어났다. 1896년 관립한어학교를 거쳐 1900년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여 1902년에 육군보병참위에 임관되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당시 의병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실패하여 음독자살을 시도하려다가 오른쪽 시신경을 다쳤다. 신규식은 계몽운동 및 실업활동에도 힘썼는데, 1901년 문동학원 강사, 1903년 덕남사숙을 설립하였으며 1909년 중동야학교의 3대 교장을 맡았고, 민족자본을 육성하기 위하여 광업회사를 발기하였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신규식은 독립운동을 위해 상해로 망명하였다. 신규식은 비밀결사 형태인 동제사와 신아동제사 등을 조직하였고, 신해혁명의 주역인 송교인(宋敎人), 진기미(陳其美), 손문(孫文) 등 중국 혁명가들과 함께 교류하면서 중국국민당 정부와의 항일 연계 투쟁을 위한 기반을 닦았다. 교육에도 힘써 1913년 상해 박달학원을 설립하여 여러 유학 청년들이 교육을 받게 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후 1915년에는 신한혁명단 상해지부장을 맡았으며, 이후 박은식과 함께 상해에서 대동보국단을 결성하였다. 1917년 대동단결선언을 발표[발기인 신규식, 박은식, 신채호, 박용만, 윤세복, 조소앙, 신석우, 한진교 등 참여]하였는데, 이 선언은 민족대동사상과 사회주의혁명을 접합하여 한국독립운동의 당위성을 세계사적 차원에서 추구하려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19년 3·1운동 발발시 상해 프랑스 조계 내에 독립임시사무소를 개설하고 임시정부수립을 추진하였다. 신규식은 『진단』이라는 잡지를 1920년에 발간하였는데, 이 잡지에는 중국 혁명가의 보도 및 일본의 악행을 폭로하였다. 이처럼 당시 한중관계와 중국 내 조선 독립운동에 있어서 깊게 기여한 신규식은 임시정부의 분열을 목격한 후 고뇌하다가 1922년 9월 25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한국혼』이 있다.

[묘소]

서울특별시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임시정부요인묘역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1962년 대한민국에서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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