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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635
한자 羅仁協
영어공식명칭 Na In-hyeop
이칭/별칭 홍암(泓菴)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조은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2년 10월 8일연표보기 - 나인협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일 - 나인협 민족대표 33인
활동 시기/일시 1921년 11월 - 나인협 출옥
몰년 시기/일시 1951년 4월 16일연표보기 - 나인협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62년연표보기 - 나인협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73년 - 나인협 국립서울현충원 안장
출생지 나인협 출생지 - 평안남도 성천군
묘소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민족대표 33인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독립운동가.

[개설]

나인협(羅仁協)[1872~1951]은 1919년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3·1운동에 참여했다.

[가계]

나석항(羅錫恒)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활동 사항]

1872년 10월 8일 평안남도 성천(成川)에서 태어나 1894년에 동학(東學)에 입교했다. 1903년 대접주(大接主)를 거쳐 의창대령(義昌大領)에 임명되었다. 1905년 동학을 천도교(天道敎)로 창건하고 중앙과 지방조직을 정비하면서 평안도 지역을 관할하는 제14교구장 대리를 맡았다. 1906년 11월 홍암(泓菴)이라는 도호(道號)를 받고 1909년 1월에는 천도교 가구 1500호를 거느린 도훈(道訓)이 되었다. 1917년부터는 천도교 원로로서 도사(道師)로 활동했다.

1919년 2월 24일 천도교 기도회 보고와 광무황제 장례식을 보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나인협은 다음날 천도교 중앙총부에서 오세창과 권동진을 만나 독립선언 준비 소식을 접하고 참여를 권유받아 승낙했다. 2월 27일 밤 김상규(金相奎)의 집에서 천도교 지도자들과 모여 독립선언식 거행에 동의하고 천도교 핵심간부 15인 중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 날인했다. 3월 1일 오후 2시, 태화관에 모인 민족대표 29명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식을 마친 후 자진 체포되어 경무총감부(警務總監部)에 구금되었다. 1920년 10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제7조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경성감옥으로 이감후 1921년 11월 만기 출옥했다.

이후 1921년 12월 중앙총부 임시 대종사장(臨時大宗師長)에 임명되었고, 1922년 1월에는 종법원(宗法院) 종법사(宗法師)에 선출되었으며 평안남도 교구를 관리하는 순회(巡廻) 직책을 맡았다. 8월에는 중앙총부에서 명칭을 바꿔 성립된 종리원의 종리사(宗理師)로 선임되었다. 이후 평양에 거주하며 천도교 도사 자격으로 평안도 지역의 천도교를 이끌었다. 1925년 천도교가 신, 구파로 분열하자 천도교 신파의 일원이 되었다. 해방 직후 천도교총부(天道敎總部) 장로실(長老室) 장로(長老)로 추대되었으며 1951년 4월 16일 사망했다.

[묘소]

1973년 10월 31일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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